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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독박 육아' 뭐가 어렵다고 난리…"내가 혼자 해볼게!" [40육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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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35주차 > 홀로 하는 육아의 어려움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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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을 정리한 지 30여분만에 다시 난장판이 된 모습. 매일 치워놓기가 무섭게 원상복귀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영원히 산 위로 돌을 굴려 올렸다던 시지프스의 노동이 떠오른다. 꼭 청소만이 아니다. 육아에서는 이처럼 무의미한 반복 작업이 셀 수 없이 많다. /사진=최우영 기자


    독박 육아는 원래 육아를 나 몰라라 하는 남편들을 비판할 때 주로 쓰이던 말이다. 현재의 4050세대나 그 윗세대에선 맞벌이를 하면서도 여자에게만 육아 부담이 지워지는 경우가 꽤나 있었다. 최근에는 육아가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이런 경우는 드물다.

    외벌이 가정에서도 독박 육아라는 표현이 맞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가 있다. 보통은 돈을 벌어오는 배우자와 육아·가사를 전담하는 배우자의 역할이 나뉘는데 굳이 육아에만 '독박' 딱지를 붙인다는 이유에서다. 전업 주부들이 독박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 "독박 출근은 왜 외면하느냐"는 날 선 반응도 나온다.

    사실 전업주부의 독박 육아 호소를 그리 좋게 보진 않았다.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서 잠시나마 '전업주부 독박 육아'를 체험했다. 결론적으로 독박 육아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 됐다.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나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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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대변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 없이 구경하며 말을 거는 15개월 아기. 애 키우는 부모에겐 집에서조차 프라이버시가 허용되지 않는다. /사진=최우영 기자


    육아만 하기도 어려운데 집안일까지 같이 하는 건 더 어렵다. 애 없을 때 하던 집안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가 쓰는 것들은 설거지부터 빨래를 다 따로 하고 소독도 돌린다. 청소와 정리는 수시로 한다. 마음먹고 한번 치워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는 그걸 순식간에 원상 복귀시키는 힘을 지녔다.

    원래 밥하기 귀찮을 땐 배달 음식도 자주 시켜 먹었는데 어린아이에겐 그럴 수가 없다. 문제는 요리할 때마다 달라붙어서 심각하게 방해한다는 것. 펼치는 형태의 주방 펜스까지 설치해봤지만 이젠 그걸 뚫고 들어온다. 청소나 설거지할 때도 달라붙는 건 마찬가지다. 장난감 주고 떨어뜨려 놓아도 꼭 기를 쓰고 부모한테 붙어서 놀려고 한다.

    아빠가 배 아파서 화장실을 가도 문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그게 차라리 낫다.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뭔가 물건 무너지는 소리가 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당장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 결국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볼일을 보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보낸다고 마냥 쉴 수는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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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와 함께 있으면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빠의 밥벌이 도구도 아이에겐 그저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사진=최우영 기자


    간혹 전업주부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시간에 주부가 편하게 쉰다는 생각이 깔린 듯하다. 그런데 막상 혼자 아이를 맡아보니 도저히 오래 쉴 짬이 안 나온다.

    우선 아침의 시작이 몹시 피곤하다. 아이가 시간 정해놓고 눈을 뜨는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아이가 일어나면 아침을 먹이고 씻긴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맞춰 옷을 입히고 준비물을 챙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는 협조적이지 않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과정에서 호통과 호소가 수십번씩 번갈아 나온다.

    아이를 등원시킨 뒤 난장판이 된 집안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아이가 잠들면 설거지를 자제하기에 전날 쓴 그릇과 식기까지 싱크대에 쌓여있다. 설거짓거리 늘리기 싫어서 내 식사는 간단한 '아점'(아침 겸 점심)으로 대충 때운다. 세탁기 돌려놓고 청소기 돌린 뒤 잠깐 쉰다. 그사이 세탁기 종료음이 들리면 곧바로 건조에 들어간다. 건조대에 걸렸던 전날 빨랫감들은 대충 개켜 아이 옷장에 쑤셔 넣는다. 자잘한 집안일 몇 가지를 추가하면 시간이 '삭제'되는 느낌이다.

    한 것도 별로 없는 듯한데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간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집안일이 덜 끝나 있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시험철에 벼락치기 하던 기분으로 일을 서두르고 아이를 데려온다. 이후 우유 먹이고 놀아주고 저녁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아이가 잘 때까지 육아가 이어진다. 아이가 먹다 남긴 밥과 반찬을 재빨리 욱여넣는 게 아빠의 저녁밥이다. 아이가 잠든 뒤에는 다음날 입고 갈 옷을 미리 준비하고 알림장을 확인한다.

    이런 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반복된다. 육아휴직 이후 33주 동안 쉬지 않고 쓰던 육아휴직기도 34주차에는 도저히 쓸 짬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아내가 집을 비우는 게 평일만이라 다행이라고 느꼈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주말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못 가는 상황이 됐다면 난이도는 훨씬 더 올라갔을 것이다.


    몸이 고달픈 것보다 더 힘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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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감을 들려 줘도 꼭 아빠 앞에 가져와서 노는 아이. 독박육아를 한 며칠 동안 아이와의 체감 거리는 항상 이 정도였다. /사진=최우영 기자


    독박 육아가 꼭 육체적인 어려움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깊은 잠을 못 자는 건 부부가 같이 아이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일도 번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지 딱히 근력이나 순발력을 요하는 것들은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혼자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여기서 오는 막막함이다. 그전에는 내가 잠시 아이를 못 봐도 배우자가 봐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 아이를 보면 온갖 돌발 상황에 대한 걱정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해열제 광고에서 "애기들 열은 왜 갑자기 찾아올까" 멘트가 나오는데 그렇게 겁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한부모 가정이었다면 이런 막막함이 덜했을까. 만약 배우자가 없어지고 나 홀로 남겨진다면 어떨까. 며칠 동안 혼자 아이를 보는 내내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버젓이 같이 사는 배우자가 육아에 관여하지 않는 다른 집들의 상황도 상상해봤다. 독박 육아를 하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이런 막막함이 아닐까 싶다.


    육아하지 않는 시간, 누군가의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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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박육아 마지막 날 저녁 찾아와 주신 장모님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그저 충성충성충성! /사진=최우영 기자


    예정된 독박 육아의 마지막 날 저녁엔 "아이 보고 싶다"는 핑계로 장모님이 와서 도와주셨다. 그렇다고 개인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동안 방치했던 기저귀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장에도 다녀왔다. 잠시 육아 루틴을 벗어났을 뿐인데도 숨통이 확 트였다. 반찬 차려놓고 천천히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평소에 아내와 육아 분담을 철저히 하는 편이다. 서로가 개인적인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가질 수 있게 보장해준다. 그동안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이런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애 키우는 부모가 잠시나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진다는 건 누군가의 분담과 배려,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나중에 복직해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 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배려하는 걸 '마음의 빚'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들에게 빚을 지기도 하고, 지우게 하기도 한다. 갚지 못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누군가 내 애를 봐준다는 것은 실로 갚지 못할 빚이다. 비록 가족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채무 관계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애 키우면 가족이 끈끈해진다"는 말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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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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