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57년 미국 투자액보다 규모 커
국내 투자여력 위축 불가피, 재정부담 우려도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 부과 시 대미 수출 타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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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회담을 앞두고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펀드에 대한 합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양측이 합의점을 찾더라도 ①자본 유출에 따른 국내투자 위축과 산업 공동화 ②재정 부담과 신용등급 강등 ③계속되는 불확실성 등 우리 경제가 3대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6일 관가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를 계기로 1박 2일 방한해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특히 이날 회담의 관심사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펀드 합의다. 한미 간 입장 차가 컸는데, 두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과 펀드 투자 협상에 대해 "타결(being finalized)에 매우 가깝다"고 말했다.
투자 규모는 3,500억 달러에서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다만, 투자 구성과 방식에서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투자금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이 한 해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최대 150억~200억 달러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이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2,000억 달러를 현금(지분)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대출·보증으로 한다는 방안이 전해지기도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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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 합의해도 산 넘어 산
문제는 합의점에 도달해도 한국 경제가 치러야 할 막대한 기회비용이다. 막대한 우리 돈을 미국에 투자하면 그만큼 우리 경제에 투자할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3,500억 달러(약 504조 원)는 부담스러운 규모다. 해외직접투자 제도(FDI)가 시행된 196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57년간 우리나라가 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 2,563억 달러 수준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 국책은행 등이 미국에 투자한 돈을 다 합쳐도 1,000억 달러 모자라다는 의미다. 매년 수백억 달러를 미국에 고정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면 국내 설비투자 등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00억 달러 수준에서 협상에 성공했더라도 국내 투자여력은 축소되고 특정 산업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재정 부담도 피할 수 없다. 200억 달러는 내년도 총수입(674조 원)의 4.2% 수준이다.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감당이 어렵고, 결국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서 대미 투자 부담까지 더해지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는 더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채무 속도가 빨라지면 국가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커진다"며 "투자 손실이 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품목별 관세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대미 투자펀드 조성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미국은 현재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6% 감소하기도 했다. 미국 상무부는 추가 품목 확대를 검토 중으로,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를 높은 수준으로 부과하면 대미 수출에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세종=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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