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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 (수)

    이슈 미술의 세계

    김종영미술상 받은 김주호 “예술의 출발은 결국 내 자신...K컬처 열풍이 그걸 증명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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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영미술상 2025 수상자 조각가 김주호

    서양미술에 주눅들지 않고

    평생 ‘우리것’ 찾아낸 뚝심

    늘씬한 8등신 대신 3등신

    대리석 말고 흙과 나무·돌로

    환하게 웃는 유쾌한 인물 조각

    호랑이·도깨비 등 친근한 소재

    강화도서 전업작가 33년째

    “자장면도 사치일 때 있었지만

    긍정과 희망 잃지 않아”

    매일경제

    2025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결정된 조각가 김주호가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들처럼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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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차로 70km를 달려 인천 강화도의 한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고인돌 유적지도 스쳐 지나갔다. 좁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자 작은 집들이 보이고 굵고 기다란 나무 둥치들이 마당에 누워 있었다. 정원엔 아담한 돌조각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조각가 김주호(76)의 살림집이자 작업실이다. 제17회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무슨 상이요?”라고 깜짝 놀랐던 그다. 첫 통화 후 며칠이 지나 만났지만 여전히 얼떨떨한 듯 했다.

    “지난 6월에 김세중조각상을 탔는데 5개월 만에 또 김종영미술상을 준다고 하니 무슨 영문인지 몰랐어요. 외국도 다녀오지 않고 교수 타이틀도 없이 그냥 작품만 만들어왔을 뿐인데 말이죠.”

    그러던 중 문득 K컬처 열풍 덕분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내왔던 우리 것의 가치를 일깨워준 점을 인정받은 게 아닐까. 우리 것을 찾는 시대의 흐름과 제 작업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지독히도 한국적이다. 재료부터가 우리 주변에 널린 흙, 점토다. 그가 서울대 조소과를 다니던 1970년대는 서구 미술을 적극 수용하던 시기라 대리석과 브론즈가 유행이었다. 대리석 원조인 이탈리아 까라라 유학 열풍도 불었지만 그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브론즈나 대리석은 재료 값이 너무 비쌌어요. 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작품 활동을 접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끊임없이 계속 작품을 하려면 재료 값이 절대로 비싸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흙으로 구은 테라코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서울에서 10여년간 미술교사로 지내던 그는 1992년 연고도 없는 강화도로 둥지를 옮겼다. 마흔 둘의 나이에 배고픈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딸은 학원도 과외도 없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어서 인사동 거리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질구이(테라코타) 소품이라도 팔아볼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자장면 한 그릇, 커피 한 잔도 사치였다. 마을 사람들이 집도 지어주고, 쓸모없는 대들보나 목재를 던져주고 갔다. 그렇게 그는 나무와 친해졌고 , 야외 조각 공원에 놓을 돌 조각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조각에서는 재료가 형태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죠. 우리나라 화강암은 대리석보다 결이 굵어서 섬세하게 깎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묵직하면서 절제된, 움직임이 많지 않은 형태로 만들어야 했죠. 형태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료가 가진 절제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작업실 곳곳에 놓은 테라코타 인물상이 저마다 흰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다. 목구멍이 보이고 혀와 이빨이 선명하다. “흙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입 구조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브론즈나 돌, 나무로는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내기 어렵죠.”

    그도 한 때는 서구 추상 조각을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니까 교감이 좀 덜 되더라구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으려면 결국 ‘사람’이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3등신에 가까운 그의 인체상은 늘씬한 8등신 서양 비례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주로 얼굴을 보지 않나요. 또 입을 크게 벌리다 보니 얼굴이 커질 수밖에 없죠.”

    강화도에서 그는 소통과 신뢰의 힘을 배웠다. 처음 강화도에 내려왔을 때는 문을 닫아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할아버지가 찾아와 “문은 논밭에 나갈 때나 닫는 거야”라고 타박을 줬다. 문을 열어놓는 것이 집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문을 열어놓으니 사람들이 먹을 것도 가져다주기도 하고, 우체부가 등기도 편하게 전해줄 수 있었다.

    그는 K컬처 열풍의 핵심에도 이런 신뢰와 소통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되짚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보면 담장이 다 낮잖아요. 외국의 크렘린궁이나 중앙아시아 궁전을 가보면 담장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우리는 임금이 사는 곳도 담이 이렇게 낮을 수가 있었어요. 백성과 소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안동 하회마을도 대궐 같은 양반집 안이 다 들여다보여요.”

    그의 작품에도 ‘담’이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음이 서로 통하려면 권위를 내세워선 안 됩니다. 문화의 가장 기본이 교감이니까요.”

    그는 영감을 주는 예술의 재료를 우리 주변에서 찾는다

    “제일 많이 보이는 게 사람이잖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거나, 지하철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놀라워요. 식당 간판만 봐도 너무 재미있어요. 일상에서 발견하는 놀라움이 제 작품의 재료가 되죠. 지금도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자꾸 번뜩입니다.”

    그는 젊은 작가들과의 전시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9월에는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서 ‘도깨비가 있다’는 전시를 열었다.

    “작품을 통해 따뜻함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 도깨비는 나무 막대기로 뚝딱거리며 사람의 아쉬움을 해결해주는 존재잖아요.”

    그는 호랑이 위에 사람이 앉아 있는 해학적인 작품을 가리키며 “호랑이도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 마음의 위안이 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 옆에는 앞에서는 서로 웃으며 좋아하다가, 뒤에서는 토라져 등을 지고 선 연인 조각이 서 있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심각하더군요. 결혼하기도, 아이 낳기도 힘들고.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다독여 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말이죠. 그런 생각에 앞뒤 모습이 다른 연인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예술의 출발은 결국 내 자신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예술의 시작을 먼 데서 찾으면 시각적인 충격은 있을지 몰라도 긴 생명력을 가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아직 우리 자신을 제대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자랑스러운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서구 취향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파요.”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겸손해야 하는데 큰상을 받아서 교만해질까 두렵다”며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화도=이향휘 선임기자

    김주호 작가는...△1949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 △1950년 1·4후퇴 때 김천 이주 △1976년 서울대 조소과 졸업 △1987년 서울대 대학원 조소과 졸업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 ‘민중미술 15년’ 등 약 200여회 단체전 참가 △2004년 학고재, 2023년 갤러리508, 2025년 나무아트 등 총 23회 개인전

    매일경제

    2025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결정된 조각가 김주호가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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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2025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결정된 조각가 김주호가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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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김종영 미술상 수상자인 조각가 김주호가 자신의 나무 조각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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