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정치부 기자 |
호되게 혼내기로 소문난 선배가 있었다. 후배를 혼낼 일이 생겼을 때 그는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어 조용히 혼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진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 선배를 좀 다르게 보게 됐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그 말을 어떻게 전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도 느꼈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생중계 업무보고를 보며 그 선배가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여러 정부 부처의 보고를 국민에게 생중계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과 질의응답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각 부처를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투명성의 제고가 과연 제대로 된 전달과 평가에 효과적인지를 되묻게 된다. 생중계는 모든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책의 맥락과 구조를 깊게 설명해주진 못한다. 이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상대로 외화 밀반출 단속과 관련해 책임 소재를 따졌다. 이 대통령은 공항공사가 그 업무를 맡고 있는지를 두고 이 사장의 답변이 당시 오락가락했다고 지적했다. 이 순간 외화 밀반출 단속 문제는 실행과 대책보다 단순 시시비비를 따지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생중계가 공직자들을 말솜씨로 평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생중계 자리에서 실무자들은 행정 성과보다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평가받는다. 준비된 정책보다 즉흥적인 발언이 더 기억에 남는 구조는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이 사장 논란과 관련해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라"고 말했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하는 말이 곧 정치다. 대통령은 "정치적 색깔로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 말 역시 정치적 논란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행정은 조용한 일이다. 정책은 그 구조와 맥락으로 설명돼야 하고, 성과는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 입증돼야 한다. 국민은 장면이 아니라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건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시키는 방식이다. 때로는 조용히 지적하며 결과로 보여주는 게 국민에게 더 큰 신뢰를 남긴다.
[이효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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