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순의 '가을과 여인'. 예화랑 |
1950년대 국전을 휩쓸며 일찌감치 스타덤에 오른 화가가 있다. 오지호에 이어 호남 구상 화단을 대표하던 임직순(1921~1996)이다. 그는 1970년대 현대화랑의 간판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1973년 프랑스 파리에서 7개월간 체류한 뒤 돌아와 현대화랑에서 연 귀국전은 완판 신화를 쏘며 14년간의 광주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했다. 오지호 추천으로 조선대 미대 교수로 부임하며 14년간 호남 구상 화단을 이끌던 그가 '서울 시대'를 활짝 연 것이다.
바로 1970~80년대 그의 원숙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창덕궁길 예화랑에서 열린다. 1974년 국전에 출품됐던 대표 유화 '가을과 여인'을 중심으로 수채화와 콩테, 드로잉 등 56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예화랑도 작가가 생전 개인전을 주로 열었던 화랑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974년 국전 출품작이자, 2022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해 열렸던 광주시립미술관 회고전 당시 화제를 모은 '가을과 여인'이다. 이 작품의 모델이 천경자 화백의 첫째 며느리라는 것이 처음으로 밝혀지며 주목받았다. 조선대 미대 학생이었던 유씨는 스승 임직순의 강력 추천으로 천경자의 며느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는 시어머니인 천경자 화폭의 모델로도 자주 등장해 근현대미술의 대표 뮤즈로 미술사에 남았다.
화가의 광주 자택 뜨락의 석류나무 아래에서 그린 이 작품은 노랗고 붉은 꽃에 둘러싸인 20대 여대생의 수줍은 듯 생기 넘치는 모습을 밝은 인상주의풍으로 담아냈다. 화사한 색채와 따뜻한 감성이 어우러진 이 작품 하나만 보더라도 그가 왜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는지 충분히 납득된다. 생전 작가의 서울집 거실에 걸렸던 유족 소장품으로 가을의 서정과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파리에서 그린 자화상과 스케치, 광주 무등산 스케치, 말년의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설경의 설악산'(1992) 등 다양한 시기의 작품이 눈길을 휘어잡는다. 인물과 꽃, 풍경 같은 소재를 즐겨 그렸던 그는 빛과 색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한국적 인상파'라고도 불린다.
그는 10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야수파의 거장 하야시 다케시를 사사한 까닭에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대담한 붓질과 뛰어난 색채감각을 익혔다. 1921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1942년 일본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하고 1956년 '화실', 1957년 '좌상'으로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임직순이 평생 사랑한 주제인 '꽃과 소녀'가 어떻게 자연의 내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확장되는지 확인하는 기회다. 작가는 생전 "시각적인 진실에서 심각적(心覺的)인 진실로 탈바꿈하게 됐으며, 어느덧 색채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로 변화를 일으키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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