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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르포]‘함정 명가’의 귀환…재도약하는 HJ중공업 영도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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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년 역사 국내 첫 조선소 다시 ‘풀가동’

    ‘독도함’ 탄생 명가…해군 MRO 최적입지

    9000TEU급 ‘친환경 컨선’ 인도 준비 한창

    중형조선소, 국내 해운업 지키는 ‘버팀목’

    [부산=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지난달 31일 찾은 HJ중공업(097230) 부산 영도조선소 안벽에 들어서자 거대한 해상 크레인이 위용을 뽐냈다. 이곳엔 대형 조선소의 상징과도 같은 골리앗 크레인은 없다. 대신 붉은색 해상 크레인이 바다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며 무게 3000톤(t)에 달하는 블록을 들어 올린다. 좁은 야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HJ중공업이 자체 개발·도입한 ‘스키드 공법’이다. 배 한 척에는 160개가 넘는 블록이 들어가는데, 이를 도크(선박 건조 공간) 밖에서 최대한 조립한 뒤 단번에 옮기는 방식이다. 이 공법을 통해 도크 점유 시간을 줄이고 연간 건조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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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전경.(사진=HJ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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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도크에서는 새롭게 건조 중인 선박 블록 용접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동안 ‘빈 도크’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영도조선소가 조선업 초호황기를 타고 완전히 되살아났다. 현재 영도조선소의 2·3·4도크는 2028년까지 수주 물량이 꽉 찬 상태다. 국내 최초 도크였던 1도크는 노후로 매립돼 기념석만 남았다.

    영도조선소는 1937년 설립된 국내 최초 조선소다. ‘대한민국 조선 1번지’이자 독도함·마라도함 등 한국 해군 함정의 상당수를 건조한 ‘특수선 명가’로 꼽힌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유상철 HJ중공업 대표는 “2021년 새로운 주주와 경영진 체제가 들어선 이후 지난해 11년 연속 적자를 털고 흑자로 전환했다”며 “조선업은 수주 후 실적 반영까지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미 확보한 물량만으로도 내년부터 흑자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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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해상 크레인.(사진=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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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선 블록 조립공장으로 들어서자 해군 경비함, 공기부양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 의장재 설치가 한창인 고속상륙정도 눈에 띄었다. 독도함·마라도함 등 국내 대표 함정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HJ중공업은 1972년 국내 최초 국산경비정을 건조한 방위산업체 1호 기업이다. 조선소 바로 옆에는 해군작전사령부가 자리한다. 유 대표는 “영도는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에 가장 적합한 입지”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특수선 분야에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와 연계한 성장도 기대된다. 유 대표는 “올해 미국 해군 함정 MRO에 필요한 함정정비협약(MSRA) 인증 실사를 마쳤고 1~2개월 내 결과가 나온다”며 “마스가 프로젝트와 연계될 경우 기존 실적에 ‘보너스’로 성장 여력이 더해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HJ중공업은 이미 미 해군 지원함 관련 MRO 입찰을 넣어둔 상태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오랫동안 특수선 분야에서 강점이 있었지만 최근엔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도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날 조선소 한편에서는 HMM(011200)의 9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이 시운전을 마치고 인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선박은 고부가가치인 메탄올 듀얼연료 친환경 선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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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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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중공업은 조선뿐 아니라 국가 해운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해운업의 뼈대가 되는 중소형 선박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중형조선소가 없으면 중견 해운사들은 선박 구매를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 유 대표는 “큰 조선소들은 1만~2만TEU급 대형 선박을 주로 만드는데, 국내 해운사 대부분은 연근해 운항용 중소형 선박이 필요하다”며 “중형조선소가 사라지면 결국 중국에서 배를 지어와야 하고 그 순간 국내 해운사들의 가격 협상력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했다.

    영도조선소는 현장 인력 구성에도 강점이 있다. 유 대표는 “필리핀 수빅조선소 시절 솜씨 좋은 용접공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 200명을 선발해 데려왔다”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작업 지시 속도가 빠르고 단일 국적 체계라 관리 효율도 높다”고 했다. 이날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방한한 필리핀 이주노동부 장관이 조선소를 직접 방문해 근로환경을 점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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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철 HJ중공업 대표가 지난 31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한국해양기자협회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한국해양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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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재)바다의품과 (사)한국해양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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