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택배기사 과로…심야배송 금지”
업계 “일괄제한은 경제근간 흔드는 조치”
커지는 새벽 배송 수요…알리까지 참전
전문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로 결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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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새벽배송으로 장사를 준비 중인데 금지라니요. 오히려 더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주 거주 30대 자영업자 권모 씨)
새벽배송 제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업계·소비자·노동계 간 찬반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심야 근무 제한이라는 취지와 달리, 산업·소비자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다. 국내 이머커스 플랫폼이 규제에 발목이 묶인 사이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만 성장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소비자·셀러·업계 “새벽배송 제한 반대”=6일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교통부 의뢰로 진행한 ‘생활물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제도개선 연구’ 보고서를 보면 250개 시·군·구 중 새벽배송 이용이 가능한 지역은 132개(52.8%)였다. 대부분 쿠팡(로켓프레시), 마켓컬리(샛별배송)가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이다.
새벽배송 이용자 500명 중 월평균 이용 횟수는 4.4회로 나타났다. 이용자 대부분은 빠른배송(77.6%), 장보는 번거로움 해소(57.6%), 장보는 시간 절약(57.6%) 등 편리함을 이용 이유로 꼽았다.
자영업자 권 모씨는“영업에 필요한 물품을 하루 만에 받아 볼 수 있어 편리하다”며 “새벽배송 서비스가 사라지면 아침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셀러(판매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는 “새벽배송은 단순히 대형 유통사의 사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 식품제조업체, 납품업체, 농가가 함께 성장시킨 생태계”라며 “새벽배송 중단은 거래망 단절과 매출 급감으로 이어져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역시 성명서를 통해 “일부 노동단체의 이익만을 앞세워 수많은 중소자영업자와 온라인 입점사업자들의 생계 기반을 무너뜨리는 황당무계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CJ대한통운·한진 등 일반 택배기사 6000여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비노조택배연합측은 적은 교통량과 짧은 이동시간, 낮은 업무강도 등 장점으로 새벽배송이 택배기사에 유리하다고 반대 입장을 전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야간배송이 멈추면 물류센터 분류, 간선운송, 거점이동 등 전 과정이 연쇄 지연돼 산업 전반의 비효율이 확대될 것”이라며 “야간노동의 일괄적 제한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커지는 수요에…업계 새벽배송 강화=새벽배송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업계는 새벽배송 이용자가 2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제품을 구매한 고객 수를 뜻하는 ‘활성 고객 수’는 2470만명이다. 1년 전보다 10% 늘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20년 2조5000억원에서 2023년 11조9000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방 소비자의 새벽배송 요구가 거세다. 교통연구원 조사에서 새벽배송 미제공 지역 주민 500명 중 84%가 ‘새벽배송을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34%는 ‘긴급 시 유용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교통연구원은 “생활물류서비스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차이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일부 지역은 상대적 삶의 질이 하락했다”고 평가했다.
업계도 새벽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2015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충청권, 경상권, 호남권 등으로 샛별배송 지역을 넓혔다. SSG닷컴도 CJ대한통운과 협업해 수도권, 충청권과 주요 광역시로 쓱 새벽배송 지역을 확장했다. 오아시스마켓은 올해 8월 대구, 창원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수요가 커지는 추세에 대응해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고도화가 진행형”이라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 불편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내 물류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알리도 참전…새벽배송 규제에 C커머스만 웃을라=새벽배송 규제가 이뤄지면 국내 유통업체의 성장이 정체되고, C(차이나)커머스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 알리익스프레스는 최근 새벽배송 관련 배송기사 등 인력 채용에 나섰다. 다만 이번 채용은 알리 자체 채용이 아닌 국내 물류 파트너사를 통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내 배송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보이는 신규 서비스라는 점을 고려했다.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와 SSG닷컴이 새벽배송을 전개하는 만큼, 이들 물류망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테무도 최근 식품 판매를 본격화했다. 통조림, 음료수 등 가공식품부터 육류, 과일 등 신선식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현지 재고, 주문, 배송 역량을 갖춘 판매자가 입점할 수 있는 구조로 중국발 직구를 넘어 국내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채널로 자리잡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유통사는 긴장하고 있다. 새벽배송 금지가 현실화할 경우 경쟁력을 잃을 수 있어서다. 그동안 국내 유통사가 C커머스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던 배경에도 새벽배송이 있었다. 국내 유통사가 또 다른 규제에 발목 잡힐 경우 C커머스의 시장 입지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C커머스의 새벽배송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당장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이커머스의 강점인 새벽배송을 제한하는 사이 C커머스가 시장 파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 “사회적 합의 충분히 거쳐야”=전문가는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거친 후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새벽배송 제한을 한 번에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를 설득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 교수는 “그동안 기업들이 새벽배송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멈춘다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 권리를 위해 제도를 만들더라도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석준·신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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