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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붓질조차 보이지 않는 초긴장의 예술...치유의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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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구자승의 ‘양머리 있는 정물’, 2024 Oil on canvas 120 x 12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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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사실주의 1세대 구자승
    선화랑 개인전 50여점 선보여
    삼성가 3대 초상 그린 대가


    그릇에 소복이 담긴 감과 술병, 오래된 주전자, 대추, 그리고 자수보가 흑갈색 고가구 위에 놓여 있다. 벽에는 양머리가 걸려 있다. 이를 한폭의 유화로 세밀하게 그린 구자승(84)의 작품은 너무 정갈해 도시적인 차가움을 발산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질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전시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화가가 1983년부터 정기적으로 신작을 발표해 온 고향 같은 곳이다. 총 50여 점의 신작을 통해 일상적 사물을 향한 그의 집요한 시선을 선보인다.

    그는 초상화가로도 유명하다. 삼성가 3대인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회장의 초상화를 모두 그렸으며,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는 “인물화처럼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 없다”며 “정면보다는 옆모습에 선이 더 많이 보여, 옆모습을 많이 그린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물화와 인물화, 드로잉을 모두 선보인다. 정물화가 독립된 장르로 발전한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화풍처럼, 구자승의 작품 또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바니타스는 ‘덧없음’을 의미하며,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철학을 화려하고 세밀한 사물을 통해 표현했다. 해골, 시계, 시든 꽃, 썩어가는 과일 등을 통해 인생의 유한성을 상기시키고, 진정한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그의 화면에도 시간이 흐르면 부패할 수밖에 없는 감과 자두, 달걀, 레몬이 배치된다. 가장 화려한 꽃은 그 이후의 시듦을 연상시키고 책과 사진, 빈 술병은 인간의 지식과 문명, 기억의 흔적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가는 “순간 지나가는 바람마저도 숨을 죽여야 하는 그런 초긴장의 상태에 도달하고 싶다”며 “어느새 내 시각이 미세한 색채와 형태에 신경이 곤두설 때쯤이면, 내 삶도 오브제들 속에 되살아난다”고 고백한다. 사물의 현 상태를 모두 정지시킨 듯한 그의 화폭에선 아름다움과 함께 긴장감이 감돈다. 붓질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화가 역시 긴장감을 안고 붓질하기에 그 긴장감을 드로잉을 하면서 분출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인체 드로잉을 보면 그가 얼마나 솜씨 좋은 작가인지, 원숙한 경지에 올랐는지 알 수 있다. 동양화처럼 화폭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백은 깊은 침묵과 사유의 공간이다.

    화가에게 정물화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상처투성이의 일상적 사물들을 그림 속에서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물들은 실제로는 깨지기도 하고 때가 묻기도 한 상처투성이의 아픈 사물이지만 내 손과 마음을 거쳐 다시 그려질 때는 본래 모습보다 온전하고 깨끗하게 표현돼 새로운 힘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홍익대 출신이 그는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예술디자인대학교(OCAD)에서 유학하고 상명대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2017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으며 18회의 부부전을 열었다. 그의 아내는 서양화가 장지원으로, 근대 조각 거장 권진규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전시는 11월 25일까지.

    매일경제

    구자승의 ‘카나다의 추억’, 2025 Oil on canvas 162 x 1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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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구자승의 ‘꽃이 있는 정물’, 2025 Oil on canvas 116x90.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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