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논란(종합)
연도별 정년퇴직 연령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그래픽=최헌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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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65세' 노사 논쟁, 與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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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퇴직 후 소득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다만 노동계가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어 진전된 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6일 정치권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정년연장 입법을 올해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만 60세인 정년을 어떤 방식으로든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게 골자다. 연장이 완성되는 시기는 2033년, 2041년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된다.
정년연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퇴직 후 소득공백이 가장 큰 문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은 5년마다 1세씩 늘어 2033년에 65세가 된다. 법정 정년을 기준으로 직장에서 은퇴하고 최대 5년까지 연금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머니투데이가 지난해 말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30~59세 정규직 상용근로자 10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년퇴직 후 일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7%로 나타났다.
문제는 정년을 늘리는 방식이다. 정년연장에는 법정 정년연장, 퇴직 후 재고용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65세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대노총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말까지 65세 법정 정년연장 법안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경영계는 법정 정년연장에 부정적이다. 현행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서 정년만 늘릴 경우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늘고, 청년층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영계는 대신 '재고용' 형태의 점진적 정년연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퇴직 후 일정 조건 아래 새 계약을 맺어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엇갈리는 만큼 법정 정년연장과 재고용을 조합하는 절충안 등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기업들이 법정 정년연장, 재고용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정년연장 논의는 이미 2년 지체돼 있고, 더 미루면 국가 책임 방기로 볼 수 있다"며 "방법론, 특히 임금 조정 문제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 희망 여부/그래픽=이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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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난 해법엔 공감하지만…정년만 올리면, 청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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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빠르게 늙고 있다. 이미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게다가 향후 20년의 고령화 속도가 지난 20년보다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감소와 숙련 인력 부족이 겹치면서 정년연장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하지만 청년 고용 위축과 기업 부담 증가 등 부작용 우려도 여전하다.
◇고령화, 10년간 노동공급 141만명 줄인다
정년연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넓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고용률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향후 10년간 노동공급은 141만 명 줄어든다. 전체 노동공급의 6.4% 수준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을 3.3%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65세까지 계속 근로할 수 있다면 향후 10년간 성장률을 0.9~1.4%포인트(p)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퇴직 이후 소득공백도 문제다.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3년부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중이다. 이에 따라 2028년 이후 정년(60세)에 은퇴하면 연금을 받기까지 5년간 소득이 끊기는 '소득 크레바스(공백)'이 발생한다.
◇ 국민 대다수도 정년연장 희망
대다수 국민도 정년연장을 바란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30~59세 정규직 상용근로자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정년퇴직 후에도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50대 응답자의 45%가 "많이 있다"고 답해 연령이 높을수록 근로 의향이 강했다.
또 응답자 가운데 89%는 정년연장이 고령화 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91%에 이른다.
하지만 정년 연장으로 고령자의 고용 경직성이 커지면 청년 고용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전체 응답자 68%는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주장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정년을 연장할 경우 우려되는 사항으로는 △청년층 신규 채용감소(27%) △인건비 부담(19%)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18%) 등이 꼽혔다.
◇ 불지핀 양대노총, 경영계는 '난색'
정년연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은 정년연장 논의 TF(태스크포스)를 출범해 논의를 지속해왔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정년연장 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한 뒤 연 첫 회의에서 2033년까지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늘리는 법안을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5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난색을 표한다. 현행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아래 법정 정년만 일률적으로 늘리면 기업 부담이 커지고 청년층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 "보완 없는 정년연장은 부작용 초래"
전문가들은 '보완책 없는 정년연장'에 신중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한은은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고령층 계속근로를 위한 정책 방향으로 법정 정년 연장보다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2016년 임금체계 조정없이 법정 정년을 연장했던 사례를 분석했을 때 수혜는 대기업 등 일부 근로자에 집중된 반면 청년층 고용은 위축되는 부작용이 컸다는 이유에서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잠재성장률 등을 고려할 때 정년연장이 필요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퇴직후 재고용 등 임금 연공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 법안에 명문화되는 방법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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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형' 임금체계 유지땐 고용·투자 감소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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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고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한다.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기보다는 정년 이후 고령자 재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재계는 법정 정년연장 시 기업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고 인사 적체도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높은 임금 연공성, 고용 경직성을 고려하면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비용·조직관리 부담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60~64세 정규직 근로자(59만명) 고용에 따른 비용(임금, 4대 보험료 사용자부담분)이 연간 30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청년 일자리 감소 역시 부작용으로 거론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16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후 2024년까지 고령 근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꼴로 줄었다. 연공형 임금 체계 등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년을 연장하자 기업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규 채용을 줄였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0여년 동안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정규직 기준)에서 고령자 고용은 777% 늘었지만 청년 고용은 오히려 약 2% 줄었다는 조사결과를를 내놓기도 했다.
재계는 법정 정년연장보단 '정년 후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가칭)과 같은 법률 제정을 바탕으로 퇴직자 재고용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별법에 재고용 시 기업 선택권 보장, 정부의 인건비 지원과 세제 혜택 등 내용을 담아 기업의 재고용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고령자 고용방식 논의에 앞서 임금 연공성, 고용 경직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선애 경총 고용정책팀장은 "근속연수에 비례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고용의 비중이 크게 높은 상황"이라며 "과도한 연공성을 완화할 수 있다면 기업으로선 고령자를 더 오래 고용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대구 달서구청에서 한 구직자가 취업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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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늘면 인건비 年30조 증가…명퇴 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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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명분에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러나 노동계가 요구하는 '정년 65세' 법제화는 임금체계 개편과 청년고용 문제 등 현실을 외면한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년연장 방식은 △법정 정년을 65세로 높이는 '법정 상향' △정년은 유지하되 고용을 65세까지 보장하는 '계속고용의무제' △퇴직자를 선별 재고용하는 '재고용제'로 구분된다.
노동계는 이 가운데 '법정 상향'을 고수한다. 기업이 재고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정 정년 상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괄적인 법정 상향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기준 국내 사업체 중 정년제를 도입한 곳은 21.8%에 불과하다. 특히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정년 규정 자체가 없거나 정년 이후 재고용에 의존한다. 이런 구조에서 법정 정년을 65세로 일괄 상향할 경우 중소기업은 인건비·퇴직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임금체계 개편'도 핵심 쟁점이다. 정년이 5년 늘면 기업 인건비가 연간 30조원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현행 연공급 중심의 임금구조를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인건비 급증은 불가피하다. 청년층 신규 채용이 줄어 고용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 역시 노동계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일본식 '계속고용제' 도입을 검토해왔다. 정년 이후에도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되 임금과 직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가 시행 중인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도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월 30만원씩 최대 36개월을 지원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과 청년고용 대책, 중소기업 지원이 결합된 '패키지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2013년 60세 정년 의무화 당시처럼 임금체계 개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시 정년연장은 의무조항, 임금체계는 권고조항으로 협의됐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됐지만 정년만 늘고 명예퇴직·권고사직 등으로 실제 퇴직연령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지금처럼 연공성이 남아 있는 임금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5년 늘리면 기업의 부담이 폭증해 명예퇴직 등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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