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성 교수의 블록체인 Pick]
이 변화의 중심에 선 국가는 미국이다. 지난 7월 18일 트럼프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미국 스테이블코인 정책의 분수령이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발행 잔액의 100%를 현금 및 예금, 만기 12개월 이하의 미국 국채(Treasury bill)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보유할 것을 의무화했다. 특히 만기 93일 이하의 T-Bill은 사실상 ‘현금성 자산(cash equivalent)’으로 간주해 담보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곧바로 미국 단기국채 수요 증가로 연결되는 제도적 구조가 법제화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최고경영자 서밋(APEC CEO SUMMIT)’에 참석해 정상 특별연설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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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러한 규제를 적극 도입한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악화된 재정 구조가 있다. 미국의 총 연방지출 대비 국채 이자비용 비중은 2021년 5.1%에서 지난해 13.4%까지 급등했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비보다 더 많은 금액을 이자 지출로 지불하는 국가가 됐다. 이자비용이 이렇게까지 증가하게 되면, 정부 재정에서 과거 채무상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미래 산업·교육·연구개발(R&D) 등 성장 관련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대규모 국가부채로 인한 이자비용 부담이 미국의 중장기 재정 여력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에 단순한 디지털 자산이 아니라 국채금리를 내려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전략적 도구로 작용한다. 국제결제은행(BIS) 연구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T-Bill 매입 수요는 미국 단기국채 금리를 0.02~0.05%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 미국 국채 규모가 약 27조~28조 달러임을 고려하면, 단기금리의 미세한 하락만으로도 연간 수십억 달러의 이자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미국 국채시장의 안정적 수요가 확보되고, 이는 곧바로 정부의 이자지출 부담 완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제는 미국의 이익이 다른 국가들에게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송금·저축 수단으로 확산되면 각국의 법정통화 사용량이 줄고 자국통화의 실질적 수요 기반이 약화된다. 이는 곧 통화정책 파급력 축소, 환율 변동성 증가, 국채금리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달러화 기반의 디지털 자산이 국내 금융·결제 인프라에 빠르게 유입될 경우, 원화의 통화주권과 정책 자율성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 달러를 기초자산으로 스테이블 코인 테더의 모형 이미지. (사진=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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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화주권 방어 인프라’로 인식하고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공격적인 산업정책이라기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확산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 장치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나 해외 결제서비스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한국 시장에 우선 도입해 생태계를 선점할 경우, 원화를 기반으로 한 국내 디지털 결제 인프라는 급속히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수단을 먼저 구축해 사용 생태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한국이 가진 고유한 강점을 원화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활용해야 한다. 삼성전자 단말기의 글로벌 점유율, K-팝·K-콘텐츠 등 한류 문화 소비층의 세계적 확산은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수단이 국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잠재적 기반이 된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송금·콘텐츠 결제·게임·메타버스 등 디지털 시장에서 활용된다면, 원화의 사용처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국채이자 부담을 완화하고 동시에 ‘디지털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 디지털 통화경쟁에 돌입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원화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이고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자산이 아니라, 앞으로의 국가경제를 좌우할 새로운 통화 인프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전공 석사 △공인회계사·세무사·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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