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국립대성당의 종 |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삼았다. 파시스트 정권인 프랑코 정부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의용대에 자원한 미국인 교사의 장렬한 최후를 그린 내용이다. 그의 죽음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그의 동료들, 그들이 속한 의용대, 나아가 인류 전체로 확장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헤밍웨이가 서문에 인용한 영국 시인의 표현처럼, 죽음을 애도하는 종이 울릴 때, 그것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물어선 안 된다.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국립대성당은 대통령 취임 예배 장소로 유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집권했던 2017년 취임 예배를 앞두고 대성당은 홈페이지에서 "대통령 당신은 소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이끌도록 부름을 받았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 성당에는 커다란 종(National Cathedral Bells)이 줄지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때도 이 종이 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소리의 의미처럼 과연 '공동선'을 위해 복무했을까.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집권 1기 시절, 연방정부의 기능이 정지되는 '셧다운'이 35일 동안 이어졌다. 역대 최장기간이었는데, 그는 스스로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2기 첫해부터 셧다운을 맞았다. 10월 1일(현지시간) 시작돼 8일 현재 39일째다. 집권 1기의 셧다운은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면서 장벽을 세우는 데 드는 예산을 둘러싸고 촉발됐다.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민주당)은 "그의 벽에는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면서 셧다운 대치 정국의 한쪽 편에 섰다. 최근 정계 은퇴를 선언한 펠로시 전 의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사악한 여자"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취임 예배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
집권 2기의 이번 셧다운은 더욱 출구가 안 보인다. 단지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또는 트럼프 대통령 표현을 따르자면 불법 이민자를 지원하게 될 '오바마 케어 지원금'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사회의 '마이너'를 배제하고 '메이저'를 챙긴다는 민주당의 공세 프레임이 셧다운 정국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그 기저에는 '정치의 실종'이 있다고 본다. 거창하게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수도 있다. 즉흥적·자극적인 소셜미디어(SNS)의 범람과 진영 논리의 심화 속에 널리 통합하지(大統) 않는 대통령, 국민의 뜻을 한데 모으지(議會) 못하는 의회가 양보 없이 충돌한 결과다. 백악관, 공화당, 민주당, 그 누구도 자신을 희생하며 종을 울리려 하지 않는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셧다운도 언젠가는 끝난다. 세간의 예측대로 11월 말 추수감사절을 넘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국립공원은 다시 문을 열 것이고, 공항은 정상 운영될 것이다. 그러면 대혼돈 끝에 어찌 됐거나 해피 엔딩일까. 안타깝게도 아니라는 쪽에 걸고 싶다. 봉합일 뿐, 해결은 아니다. 탄성 한계를 넘은 스프링이 다시는 제 모습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도를 넘어 임계치가 깨진 정치는 복구되기 어렵다. 불행한 사태의 반복이 우려되는 이유다. 한국의 국회 연설에서 나왔던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청와대는 청와대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야당은 야당답게, 언론은 언론답게)'이라는 표현을 미국 정계에서도 곱씹어봤으면 하는 시절이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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