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일본인 관광객 모녀를 치어 50대 어머니를 숨지게 한 30대 남성 서모씨가 5일 서올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5.11.05/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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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최근 음주운전 사고가 다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인 모녀와 캐나다인 남성 등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잇따라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K-음주운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국가 이미지 훼손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음주운전 대국"
일본인 모녀 사망 소식 이후 일본 언론은 한국의 음주운전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TV아사히는 "한국의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일본의 6배"라고 보도했다. 일본 국민들은 "한국은 음주운전 대국", "안전한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근 5년간 한국의 음주운전 적발 건수를 비교한 결과 일본의 6.6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한국보다 3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하면, 실질 격차는 15배 이상으로 벌어진다는 분석이다.
최근 3년간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전체 건수는 감소했지만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022년 1만5059건, 2023년 1만3042건, 2024년 1만1037건으로 줄었지만 재범률은 같은 기간 42.2%, 42.3%, 43.8%로 상승했다. 국내에서 음주운전보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는 마약범죄(51.9%)뿐이다.
법이 약해서일까
2018년 12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윤창호법)에 따라 강화된 음주운전 처벌기준. 그래픽=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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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음주운전 단속 기준은 국제적으로도 엄격한 편이다. 도로교통법상 한국은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면 음주운전으로 규정한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0.03%, 프랑스는 0.05%, 미국 대부분의 주와 영국은 0.08%부터 단속 대상으로 한다.
처벌 규정도 가볍지 않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즉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피의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같은 범죄에 대해 일본은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형을, 프랑스는 최대 10년, 미국은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두고 있다.
판사의 잘못일까
일각에서는 “판사들이 처벌을 가볍게 내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사법체계가 양형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은 과거 동일한 범죄라도 재판부에 따라 형량 격차가 큰 것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2006년 도입됐다. 헌법은 법관이 양형기준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할 경우 구체적 이유를 밝히도록 하고 있다. 판사가 상습 음주운전자에게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하기에는 큰 부담이 따르는 구조다.
문제는 음주운전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음주운전에 대해 최대 12년의 양형 기준을 두고 있다. 또한 처벌 감경을 위한 양형 인자도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유가 있는 경우, △도로교통상 위험이 낮은 경우, △반성문 제출이나 금주 교육 이수, 차량 매각 등 '진지한 반성태도'를 보인 경우, △초범인 경우 등을 적용하고 있다.
음주운전을 하고도 실형을 피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음주운전 사건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3년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2만5119명 중 절반이 넘는 1만4054명(55.9%)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에 대해 감형 없이 처벌해 달라"는 국민동의청원도 등장했다. 만취 음주운전 차량에 남편을 잃은 쌍둥이 임산부 A씨가 지난 10일 올린 청원으로, 초범, 자진신고, 합의, 반성문 제출 등을 감형 사유로 볼 수 없도록 법에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또한 형량의 하한을 현행 3년에서 최소 8년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감형 전면 금지는 위헌 소지가 있으나 최저형 상향 등 처벌 강화 논의는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만취 음주운전 차량에 남편을 잃은 쌍둥이 임산부가 올린 음주운전에 대한 '감형 없는 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온지 사흘만에 1만명을 넘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5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사진=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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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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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시연하는 국민 체험단 이동준씨. 도로교통공단은 국민 체험단 20명의 차량에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설치하고 3개월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범 캠페인을 진행했다. 2023.6.15/연합뉴스 |
음주운전은 처벌 강화만으로 차단하기 어렵다. 음주가 충동성과 판단력 저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재범률이 높은 구조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차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음주운전 방지장치' 가 기술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IID의 음주운전 억제 효과는 해외 사례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1986년 세계 최초로 IID를 도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교통안전국이 2004년 의회에 제출한 'IID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장치가 설치된 기간 동안 음주운전 재범률이 최대 90%까지 감소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관리국(NHTSA)은 공식 자료를 통해 IID 설치를 의무화한 주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의 치명적 사고가 26%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장치를 제거한 이후에는 재범률이 다시 올라가 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지난해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IID의 의무 부착 기간은 운전면허 결격 기간과 동일하다. 결격 기간이 2년이었다면, 2년 후에 장치를 제거할 수 있다. IID의 부착 기간 동안에 음주운전자의 재범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계도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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