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m 지점 절단, 중수본도 "위험" 인정…'하부→상부' 작업 순서도 의문
전문성 필요한데 비숙련 단기직 투입했나…작업·안전 관리 부실 가능성
붕괴한 울산화력 보일러타워 |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의 매몰자 구조·수색 작업이 지난 14일 마무리되면서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고의 원인 규명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사고 당시 정황, 공사 관련 문건, 전문가 분석 등을 종합하면 보일러 타워 5호기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여러 요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과 노동 당국의 수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사법 처리 범위도 결정된다.
또 이번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대형 구조물 해체에 대한 제도적인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붕괴 구조물 속에서 힘겨운 수색작업 |
◇ 중수본도 "너무 위험하다"고 한 25m 취약화, 왜 했나
붕괴 사고는 발파 때 보일러 타워가 목표한 방향으로 쉽게 무너지도록 기둥과 철골 구조물 등을 미리 잘라 놓는 '사전 취약화 작업' 중에 일어났는데, 어떤 과정보다 안전하게 진행돼야 할 이 작업이 졸속으로 진행된 정황이 속속 확인됐다.
타워 해체 시공사인 HJ중공업이 작성한 '울산 기력 4·5·6호기 해체공사 안전관리계획서(이하 안전계획서)'를 보면, 취약화 작업은 철골 기둥 상하부 구간 2곳에서 하게 돼 있다.
이후 발파 때 타워가 무너지는 방향에 있는 기둥 2개의 지상 1m와 12m 지점에서 취약화 작업이 이뤄졌다.
비유하자면 무거운 탁자가 쉽게 넘어지도록 다리 2개를 톱으로 미리 잘라서 안전성을 낮춰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안전계획서에는 없는 25m 지점에서 취약화와 방호(비산물 방지와 소음 저감)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사고수습본부도 공식 브리핑에서 이런 작업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사고 현장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취재진은 당시 발파를 앞둔 6호기의 취약화 진척 정도를 물었는데, 오영민 중수본 대변인은 "(5호기 붕괴 이전에는) 모든 취약화 작업이 1m, 12m, 25m에서 되고 있는데, (이번 6호기의 경우) 25m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취약화를 안 한다"라고 답변했다.
'너무 위험하다'고 언급한 해당 작업은 앞서 4호기에서 100% 완료됐지만, 재차 5호기에서 반복되는 과정에서 결국 참사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HJ중공업 대표 |
◇ 철 구조물 더 크게, 많이 잘랐나…'과도한 취약화' 의혹
안전계획서에도 없는 25m 지점 취약화 필요성이 있었다면, 그 순서라도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오는 방식을 택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의 '기력 4·5·6호기 해체공사 기술시방서'는 '일반적으로 사전 취약화 작업은 최상층부터 하고, 상층 부재의 내장재 철거나 취약화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는 아래층 주요 지지부재 취약화를 실시해선 안 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시공사인 HJ중공업과 발파 하도급을 맡은 코리아카코는 앞서 서천화력발전소에서도 발파 해체 공사를 진행했는데, 올해 3월 발파 때 보일러 건물이 넘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서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단번에 타워가 무너지도록 '충분한 취약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타워 철거 완료가 애초 계획보다 수개월 미뤄진 데다, 이달 16일로 예정됐던 발파 일정도 맞춰야 했던 점을 고려할 때 과도한 작업 지시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하는 대목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서천화력 실패 전례로 취약화 작업이 계획서보다 더 강하게 진행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취약화 지점과 개수, 규격 등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절단기로 진입로 확보 |
◇ 높이 63m 구조물이 허가 없이 해체 가능…안전관리 '구멍'
발주처, 시공사, 발파업체의 안전관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동서발전과 HJ중공업은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배치됐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물음에 함구하는 상태다.
두 회사는 지난 13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해당 질의에 대해서는 "수사와 조사를 앞두고 있어 답변이 곤란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러나 관련 제도와 규정의 사각지대를 틈타 현장 안전 관리·감독이 부실하게 이뤄졌을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울산시 남구에 따르면 보일러 타워에 앞서 철거가 시작된 4·5·6호기 본관 건물(지상 5층, 연면적 3만8천240㎡)은 지난해 11월 해체 허가를 받아 절차대로 철거가 진행 중이다.
특히 2021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건축물관리법을 적용받아, 현장에 상주 감리를 두는 등 이전보다 강화된 안전 규정이 적용됐다.
그런데 철재 구조물인 보일러 타워는 건축물로 분류되지 않아 강화된 법 적용은 물론 지자체의 해체 허가나 신고 대상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거대 구조물을 해체하는 대형 공사가 현행법상으로는 관할 지자체 관리 밖에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동서발전은 안전 관리를 위해 지난해 감리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업체의 감리 범위가 본관·보일러 타워·굴뚝(연돌) 등 모든 시설의 해체를 포괄하는 것인지, 혹은 특정 업무에 한정된 것인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 부회장은 "무려 60m가 넘는 구조물 해체가 지자체 관리 없이 진행되는 것은 명백한 제도의 허점"이라며 "공단이 있는 지자체는 그 특수성을 반영해 구조물 해체까지 관리해야 하고, 건축물에 준하는 안전 관리가 이뤄지도록 제도 개선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울산화력 보일러타워 4·6호기 발파 |
◇ "비숙련 노동자 무리하게 투입한 것 아닌지 규명해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고와 관련, "(당시 작업자 중에) 정규직이 1명이고 나머지가 다 비정규직이었다"며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한 근로자는 플랜트 건설 일이 처음으로, 인력업체 소개로 3일부터 일용직으로 근무하다 6일 사고를 당해 숨졌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는 동서발전의 기술시방서에 명시된 '계약상대자는 우수한 기능공을 동원해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한다'는 조항과 배치될 수 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와 조사에서 비숙련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투입된 것은 아닌지 규명돼야 한다"면서 "수급업체가 단기 비정규직을 동원하는 것도 형태를 달리는 '위험의 외주화'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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