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법에 학대 정의 있지만 경계 모호…사례마다 판단 달라
훈육 목적이라도 신체적 체벌은 학대 가능성 높아…"물리적 처벌 최소화"
'아이에게 상처 되는 말' |
(서울=연합뉴스) 김빛나 기자 = "애한테 화풀이한 거네" vs "(자녀를) 때린 것도 아니고 벌준 건데 체포하나."
최근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앉았다 일어서기' 3천번을 시킨 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온라인에서는 해당 행동이 학대인지 훈육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신체적 폭행이 없었는데도 아동학대로 체포된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황상 학대로 신고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이처럼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 '무엇이 아동학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선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인 19일을 맞아 아동학대와 훈육의 경계를 짚어보고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봤다.
아동 학대 (PG) |
◇ 마늘 먹인 부모는 학대…창문 못 열게 한 부모는 무죄
법에 아동학대의 정의가 명시돼 있는데도 실제 사건에서 훈육과 학대를 두고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법의 해석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는 아동학대를 18세 미만의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이나 아동의 보호자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 조항만으로 보호자의 방식이 적절했는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난해 사법기관인 경찰은 '가정·학교 내 아동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지침서는 15가지 기준을 토대로 172건의 사례를 분석해, 어떤 경우가 학대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중 '신체적 체벌'은 훈육 목적이라 해도 아동학대로 인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양치를 하던 중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3세 자녀의 왼쪽 뺨을 한 차례 때린 아버지는 훈육 목적과 관계없이 아동학대로 판단됐다.
반면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려는 일회성 훈육은 학대로 보지 않은 사례도 있다.
미성년자 자녀가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30분간 엎드려뻗쳐와 기마자세를 시킨 부모는 자녀에게 사과했고 일회성에 그쳤다는 점에서 혐의없음으로 결론 났다.
'정서적 학대' 영역에서도 훈육을 표방했더라도 학대로 판단된 경우가 있다. 자녀가 잔인한 유튜브 방송을 본다는 이유로 마늘 3~4개와 양파 반 개를 먹게 한 부모는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한 것으로 인정됐다.
수사 단계에서 학대로 판단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생 아들이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둔다는 이유로 창틀에 못을 박아둔 계부에 대해 지난 9일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창틀에 박힌 못 때문에 창문을 아예 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고, 자녀의 나이나 교육 수준을 고려할 때 스스로 나사못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 계부가 또다른 10세 아들 앞에서 욕설한 행위는 정서적 학대로 인정받아 벌금 30만원의 선고 유예 처분을 받았다.
'365일, 긍정양육' |
◇ 특정 행위로는 판단 어려워…"물리적 체벌 최소화해야"
아동학대 의심 사건은 전후 맥락과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범죄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역시 아동학대와 훈육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호자가 훈육 목적으로 3대를 때리면 훈육, 5대를 때리면 학대,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앉았다 일어서기' 3천번 사례의 경우에도 단순히 '특정 행위'로만 아동학대로 판단하기에는 어렵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다만 신체 체벌은 아동학대로 이어질 여지가 있는 만큼 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박 교수는 "아동의 행위로 감정이 상한 보호자가 물리적 힘을 행사할 경우 학대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그동안 물리적 체벌 중심의 훈육이 이뤄졌는데 이제는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아, '사랑의 매'와 같은 형태의 체벌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신체학대 여지가 없는 훈육 방식으로는 청소·정리 등 벌칙 행위 시키기, 아동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 잠시 다른 공간에 분리해 스스로 행동을 돌아보게 하기 등이 제안됐다.
특정 행위를 두고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평소 양육자의 인권 감수성이나 태도가 핵심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가진 양육자라면 문제가 있는 행위를 했을 때 양심의 가책에 따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며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아동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관된 메시지로 전달했다면, 학대가 발생할 여지를 스스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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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 80% 이상이 부모…"학대 예방 부모교육 접근성 확대 필요"
이처럼 학대와 훈육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양육자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예방 정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동시에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부모가 학대 문제를 논의하거나 스스로 성찰할 기회가 적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실제 최근까지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 80% 이상은 부모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명된 2만4천492건 중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2만603건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2023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2만5천739건에서도 부모가 아동학대를 저지른 사례는 2만2천106건(85.9%)에 달했다.
이 같은 이유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부모 교육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신청제로 운영돼 위기가정보다는 평소 양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가 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한 부모되기 |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예방 부모교육 횟수는 533회, 수강인원은 1만741명이었다. 2023년에는 총 580회·1만1천19명, 2022년은 568회·8천917명이었다.
해당 교육은 각 시도 및 시군구 육아종합지원센터가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부모들이 신청해서 참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예방 효과를 높이려면 교육 접근성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는 "부모 급여 등 복지 혜택을 받을 때 아동학대 관련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위기 가정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또한 지자체의 교육 프로그램도 제각각인 만큼 교육 콘텐츠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양육자들이 아동학대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 교수는 "부모가 경제적·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동학대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에 놓인다"며 "독일에서는 유치원이 부모 상담과 가족 지원을 함께 수행하는 '가족센터'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제도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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