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완료 32곳 중 올해 준공은 단 2곳
220곳 중 54곳이 평균 소요기간 넘어
분담금 폭등·동의율 갈등까지 겹치며 흔들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빌라촌. [헤럴드경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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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서울시가 ‘소규모 정비의 대표 모델’로 육성해 온 가로주택정비사업(모아주택)이 현장에서 속도 저하와 조합 갈등, 공공 역할 부재 등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며 제도 설계와 실행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도시계획도로 또는 폭 6m 이상 도로로 둘러싸인 1만3000㎡ 미만 가로구역에서 노후·불량건축물 비율이 60% 이상인 곳을 대상으로 추진된다.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절차가 생략돼 평균 3~4년이면 사업이 완료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서울시가 평균 3~4년이면 완료되는 속도 전형 사업이라고 설명해 온 것과 달리, 실제 준공 실적은 연간 한 자릿수에 그치고 현재 진행 중인 사업지(220곳)의 4분의 1(54곳)은 이미 5년 이상 지연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합설립인가 시기가 2010년대인 곳들도 있는데, 개별 사업장마다 서로 다른 이유가 겹쳐 늦어진 사례가 많다”며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구역지정 이후 동의율이 모이지 않으면 사업이 방치된다. 주민들 의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 모아주택 활성화 정책 이후 가로주택 사업지는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사업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9일 서울시 정보몽땅 ‘가로주택정비사업 추진 현황’에 따르면 올해 준공된 사업지는 ▷역삼목화연립(2019년 조합설립인가 → 2024년 3월 준공) ▷유림 가로주택정비사업(2020년 조합설립인가 → 2024년 6월 준공) 단 두 곳뿐이다.
두 사업 모두 ‘평균 3~4년’ 기준을 넘어 5년 이상이 소요됐다. 지난해 준공은 4곳, 2023년은 6곳으로 최근 3년간 총 12건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 전역에서 200곳 넘는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적은 저조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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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방식도 편중돼 있다. 220곳 중 207곳이 조합 방식이며, 지정 개발자(신탁)방식은 13곳에 불과하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상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는 공공시행자(LH·SH) 방식은 주민 거부감과 사유재산 이슈로 인해 실제 추진 사례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시행자는 토지면적 1/2 이상, 소유자 2/3 이상 동의가 필요해 주민 부담이 크다”며 “조합이 공공과 공동으로 진행하며 금융지원을 받는 공공 참여 방식은 일부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지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분담금 폭등이 가장 두드러진다. 서울 중랑구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지는 최근 조합원 기준 분양가가 84㎡(이하 전용면적) 4억2000만원, 59㎡가 3억원대로 잠정 산정돼 조합원 사이에서 “부담이 너무 커서 사업을 유지할지 걱정”이라는 반응이 잇따른다.
한 조합원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조합원 자격이 박탈돼 나중에 감정평가 금액으로 청산당하게 된다”며 “일단 신청해 두고, 동호수 추첨 단계에서 전매를 고려하라는 분위기가 조합 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고 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 시공을 담당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합 내부 갈등이 심해지면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소송 지연 기간 금융비용이 증가해 분양가는 더 오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도 갈등은 반복된다. 종로구 숭인동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지는 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 준비가 한창인데, 조합설립준비위원회는 토지 소유자들에게 “권리산정일까지 동의하지 않으면 조합원이 될 수 없고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안내문을 여러 차례 발송했다. 동의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압박을 받는 탓에, 소유자들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드러나는 난관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합 내 갈등부터 분양가 논란, 금융비용 증가 등 요인마다 성격이 달라 일률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결국 조합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행정적·사법적 절차가 이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시간과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22년 모아주택·모아타운 활성화 정책 이후 사업지 증가와 절차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일정 규모 이상 누적된 지연과 갈등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의 틀 안에서 공공 개입의 여지를 넓히고 사업 방식 다양화를 유도하지 않으면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애초부터 내세웠던 ‘신속한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가로주택을 ‘모아주택’으로 통칭하며 제도 개선을 병행하고 있다”며 “내년 2월부터 모아주택 동의율이 기존 80%에서 75%로 낮아지는 등 완화안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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