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1 (수)

    가야금 병창 예술가 김현정, 전통의 숨결을 내일로 잇는 사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국악컴퍼니 '여는 소리 현' 대표의 이야기

    스승의 소리를 오늘로 이어줘야 했다. 그래야 '내일'도 어디선가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전통의 맥을 오늘의 감성으로 잇고 있다는 '가야금병창' 예술가 김현정의 답이다.

    "우륵만 살다 갔으면 가야와 신라 음악이 있었겠어요?" 이른바 K-클래식의 조상 격인 우륵도 세명의 제자(계고, 법지, 만덕)를 통해 숨을 이은 셈이다.

    부산과 칠곡을 오가며 공연·교육·연구를 붙들어온 그는 전통을 단순한 보존의 영역에 두지 않는다. 스승에게서 배운 울림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열어내며 전통이 내일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정의 뿌리는 분명하다. 부산에서 지수복 명인을 사사했고 이후 안숙선 명창에게서 병창의 정통 창법을 배웠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로 지정됐으며 박귀희 명창 기념사업회 전승 활동에 10년 넘게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22년 공로패를 받았다.
    아시아경제

    가야금 병창 예술가 김현정 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려한 이력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질문이다. 전통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고 또 이어갈 것인가.

    칠곡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장소다. 박귀희 명창의 고향이자 병창 전승의 뿌리가 깊은 곳. 김현정은 "부산과 서울에서 배운 소리가 칠곡의 무대에서 다시 울릴 때 전통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감정이 된다"고 말한다. 그에게 전통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대의 음악에 갇힌 개념이 아니다. 삶과 정서를 잇는 연결선이고 지역을 넘어 사람 사이를 잇는 문화적 호흡에 가깝다.

    이런 관점은 그의 플랫폼인 국악예술컴퍼니 '여는소리 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전통음악을 공연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과 연구로 확장하려 한다. 대학 강의, 아카데미, 체험형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전통음악을 일상 속으로 가져오는 시도를 이어간다. "예술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이 실천으로 번지는 지점이다.

    무대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올해 10월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올린 '소리사색'은 그의 개인 서사를 병창으로 풀어낸 무대였다. 11년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선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김현정은 그날 관객의 눈빛과 호흡에서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제 삶을 네개의 이야기로 풀어낸 공연이 '소리사색'이었어요. 엄마로서의 사랑, 스승과 제자의 인연, 부모님께 바치는 효심, 나 자신에게 전하는 노래 등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공연이었습니다."
    아시아경제

    2016년 10월 지수복 선생(오른쪽)과 함께한 무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오는 11월 28일 오후 7시 30분 칠곡향사아트센터에서 '가락인연'을 펼친다. 스승의 고향에서 배움의 시간을 되새기며 가야금 가락이 맺어준 인연을 다시 잇는 무대다. 12월 부산에서는 가야금병창 '수궁가' 전막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수복제·안숙선제·박귀희제의 대목을 엮어 전통 계보를 하나의 흐름처럼 읽어내려는 도전이다.

    그의 작업은 무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연구자로서 행보도 꾸준하다. 박사논문에서 1982년부터 2024년까지의 가야금병창 연구를 질적 메타분석으로 정리했다.

    "기록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음악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 미래로 건너가게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시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교육 교재와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 리더십 콘서트와 어린이 체험형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가야금병창은 노래와 연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이에요. 손끝까지 마음이 닿는 느낌이랄까요. 이 소리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힘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섭니다." 김현정에게 가야금병창은 기술의 결합이 아니라 마음의 언어였다.
    아시아경제

    민속극장 풍류 대기실에서 안숙선 선생(오른쪽)과 함께.


    아시아경제

    박귀희 명창 기념사업회 전승 활동에 10년 넘게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22년 안숙선 선생으로부터 받은 공로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가 교육 활동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것도 마음이다. "교육의 형태는 달라도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예술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믿어요."

    칠곡에서 운영하는 '향사 가야금병창 아카데미'에서는 그 믿음이 현실이 된다. 2011년부터 이어온 이 전승교육에서 그는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수강생들을 만나고, 그들이 전국 국악대회에서 장원을 따고 예술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전통의 내일을 본다.

    "전통은 과거에 머문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예술이다." 전통은 기록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숨 쉬게 하는 예술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현정의 무대와 연구, 교육은 모두 이 문장의 연장선에 있다. 오래된 선율의 깊이를 품되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는 일. 전통을 지키는 사람을 넘어 전통이 내일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사람. 오늘 듣는 그의 소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공명하는 까닭이다.

    ◆가야금 병창 예술가 김현정은?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와 한국음악학 석사를 취득했고,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다.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극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이며 판소리 춘향가 전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인간과 자연학회 전통예술 분과위원과 부산국악협회 가야금병창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칠곡 향사 가야금병창 아카데미를 비롯해 중앙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했고, 국악컴퍼니 '여는소리 현'을 이끌고 있다.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