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수출 불발 우려에 日총리 수용 정황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소재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왼쪽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 뉴시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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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대만 주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보도를 부인했다.
중국이 콩 안 사면 어쩌나
2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일본 개입’ 발언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이를 경청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다카이치 총리와 통화해 대만 관련 발언의 수위를 낮춰 줄 것을 제안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이것이 발언을 철회하라고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게 일본 관리들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를 제약하고 있는 일본 국내 정치적 상황에 대해 들었고 중국을 화나게 한 발언을 완전히 거둬들이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미국 소식통이 WSJ에 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관련 마찰로 자신이 지난달 시 주석과 합의한 미중 무역 긴장 완화 조치가 위태로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일본 관리들은 해석하고 있다. 백악관과 가까운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 약속한 미국산 대두(콩) 구매를 미루는 상황이라고 WSJ에 말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대두를) 좀 더 빨리 구입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과 중국 간 관계는 매우 좋고, 이는 미국의 소중한 동맹인 일본에도 유익하다”라며 “내 생각에는 시 주석이 콩을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의 구매를 크게 늘릴 텐데, 우리 농민들에게 좋은 것은 내게도 좋다”고 말했다.
트럼프 약점 아는 시진핑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양자 회담을 마치고 나가며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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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알고 있는 시 주석은 자신의 최우선 관심사인 대만을 무역과 연계하려 한다는 게 WSJ 진단이다. 시 주석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시간 중 절반가량을 ‘중국이 역사적으로 대만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과 ‘미국과 중국이 세계 질서를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중국의 대만 영유권을 인정하되 지지하지 않는 미국의 입장을 트럼프 집권 시기 ‘대만 독립 반대’로 바꾼다는 게 시 주석 목표라고 WSJ는 분석했다.
동맹국 일본보다 중국을 우선시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마뜩하지 않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 게 일본의 당면 현실이다. 26일 일본 국회 여야 당수 토론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시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는데, 일부 전문가는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충고를 반영한 양보 신호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보도에 대해 처음엔 답변을 회피하다 뒤늦게 부인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2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WSJ 보도가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회담(통화)의 상세한 내용은 외교상 대화이므로 답변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후 회견에선 "그러한 사실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 둔다"며 "WSJ 측에도 의사 표시를 했다"고 밝혔다. 말을 바꾼 이유에 대해선 "정부에 많은 조회(문의)가 있어서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7일 국회 답변 과정에서 대만 유사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고, 중국은 일본 오사카 주재 총영사가 엑스(X)에 다카이치 총리를 겨냥해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리는 등 격렬하게 반발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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