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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인터뷰] 연평포격전 15년... 피와 비명의 ‘13분’ 무대에 서는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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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공호 안은 피와 비명으로 가득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연평도 포격전 전상자인 배우 이한(34)씨는 지난 25일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 상담센터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2010년 포격 당시 그는 해병대 일병이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열아홉의 병사가 겪기엔 너무도 참혹한 순간이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향해 포탄을 쏟아냈다. 6·25 전쟁 휴전 후 북한이 처음으로 민간 지역을 정조준한 공격이었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장병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 2명도 숨졌다. 연평도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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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에 해병대 연평부대가 대응 사격에 나서고 있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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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당시 북한의 122㎜ 방사포에 의해 얼굴과 왼쪽 다리 등 4곳에 파편상을 입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

    병실 복도에서 식사 카트가 굴러오는 소리에도 심장이 멎을 듯한 공황이 찾아왔다고 했다. 전역 후 배우의 길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무대가 사라지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그에게 다시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해였다. 연평도 포격전을 재현한 연극 ‘연평’ 출연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는 “과거를 마주하는 게 너무 어려웠지만, 상이군인 처우와 인식 개선을 위한 작품이라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씨는 올해도 연평도 포격전을 다룬 연극 ‘13분’으로 관객을 만난다. 13분은 해병대가 북한의 기습 포격에 대응 사격을 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오는 12월 4일 초연을 앞두고 이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이주은 청년부상제대군인 상담센터 운영실장도 함께 했다. 해병대 예비역 대위인 이 실장은 김포에서 경계 근무 중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가 폭발해 왼쪽 발목 아래를 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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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조선비즈와 만난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 상담센터 이주은 운영실장(왼쪽)과 이한 주임. /김관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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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포격전이 15년이 지났다.

    “잊혀지는 듯하다. 내 일, 내 가족 일이 아니면 아무리 큰 사건도 시간에 흐려진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남는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일상 뒤에는 희생이 있다. 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 포격전이 충분히 기억되지 않는 것 같다.

    거창한 기념 행사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이들 중 누군가는 다리를 잃고, 평생 약을 먹으며 사는 부상 군인일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알아주면 좋겠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는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

    “평소 같은 훈련 일정이었다. 방공호에서 대기하다 바람 쐬러 잠시 나왔는데, 예고 없이 포탄이 떨어졌다. 몸이 붕 뜨고 주변이 느리게 보였다. 전우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나도 땅에 내던져졌다. 하반신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과 그러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씨는 양쪽 광대와 왼쪽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박힌 상태였다. 후임인 고(故) 문광욱 일병과 방공호 문 앞에 엎드려 포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고 들었다.

    품에 있던 직속 후임 광욱이(문 일병)는 어디를 다쳤는지 겉으로는 안 보였는데, 점점 숨을 못 쉬고 얼굴이 파랗게 변하다 결국 숨을 거뒀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이름을 부르며 버티라고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문이 열린 방공호 안은 피와 비명으로 가득했다. 팔이 반쯤 날아간 선임, 발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선임들이 함께 있었다. 그 후 연평도 부두에서 어선을 타고 해군 쾌속정을 거쳐 평택 병원까지 이동하는 데 약 10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후임은 세상을 떠났고, 많은 전우가 살릴 수 있었던 팔다리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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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달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연평도 포격전 당시 상황을 다룬 연극 '13분'이 개봉한다. 주연 배우로 참전용사인 이한이 출연한다. /사단법인 퍼플하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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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포격전을 재현한 작품에 출연하는 게 쉽지 않았겠다.

    “처음 연극 ‘연평’의 주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게 두려워 고민을 많이 했다. PTSD 치료를 위해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도 출연을 말렸다. 그래도 상이 군인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용기를 냈다.

    오히려 연극을 하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좋아졌다. 거울 치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반복하다 보니 상처가 조금씩 무뎌지기도 했다.”

    ―올해도 연평도 포격전을 다룬 연극 ’13분’에 출연하는데, 어떤 작품인가.

    “연평은 연평부대원과 주민들을 함께 그려 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관통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13분은 포격 당시 대응 사격에 초점을 맞췄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무대 위에서 구현하려 한다.

    결국 핵심은 왜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지다.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들, 지금도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부상자들을 무대로 올려 관객이 군인과 부상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다.”

    13분은 배우 이영애가 후원하는 퍼플하트가 주최·주관하고 극단 ‘수평선’이 제작했다. 다음 달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이씨가 주연 배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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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포격전을 다룬 연극 '13분'의 출연 배우들이 27일 연습하고 있다. /배우 이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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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 상담센터 일도 3년째 돕고 있다. 상담센터는 군 복무 중 부상을 입고 제대한 청년들이 합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로 2022년 문을 열었다. 이주은 실장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건의한 게 계기가 됐다.

    이씨와 이 실장은 상이군인 신청 기간과 등급 기준을 개선할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부상 제대 군인 대부분이 20대 초반인데, 상이군인 등급 산정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등급 기준도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상이등급 7급은 정신·신경 장애로 ‘노동력의 4분의 1 상실’이고 6급 2항은 ‘3분의 1’이다. 이를 측정할 기준이 분명하지 않지만, 보상금은 각각 169만원, 65만원으로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당장 이 실장도 국가보훈부가 전상(전투 중 입은 상이)으로 보지 않아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이 실장은 여전히 소송 중이다.

    ―부상 군인과 관련해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인식이 먼저 바뀌었으면 한다. 징병제로 사실 끌려가 듯 군대를 간다. 그럼에도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이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일상을 누린다.

    또 군 생활 중 다치고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런 희생과 헌신을 그저 마음 한쪽에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연극 ‘13분’으로 연평도 포격전과 그날의 이름을 한번 더 떠올려 준다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김관래 기자(rae@chosunbiz.com);권우석 기자(rainston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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