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야전 곳곳에선 계엄 상처 여전
공감 못 받는 포상, 번복된 징계
"신상필벌, 갈라치기 돼선 안 돼"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가 의결되자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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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에 인생을 바칠 것 같았던 옛 동료들이, 진지하게 전역을 물어오고 있습니다."
예비역 대위 김모씨는 최근 몇 달 사이 함께 복무했던 동료들의 '전역 상담' 전화를 받는 일이 늘었다. 2010년 전후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707 특수임무단 등에서 근무했던 그는 이미 수년 전 군을 떠났지만, '위국헌신(나라를 지키고 자신을 바친다)' 자부심 속에 군대에 뼈를 묻을 것 같던 동기 현역 장교들이 최근 진지하게 "더 이상 미래가 없다"며 전역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을 물어 온다고 했다.
김씨는 3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보 병과에서 자부심을 갖고 성장해오던 친구들은 새 정부 들어 병과 전반의 진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며 "'계엄 동조 세력'으로 낙인찍혔다는데 괴로움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새 정부는 방첩사령부 등 '정보 병과' 인원 전반의 계엄 계획 가담 또는 동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계엄 당시 나름대로 현장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부당한 명령을 피해보려고 애썼던 사람들도 많은데, 군을 향한 질타의 시선 속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야전 지휘관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란군' 시선 속 참담 느낀 1년...'파격 특진'도 상처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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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출동 명령으로 계엄 현장 전면에 섰던 군은 벌써 1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 신음하고 있다. 1년 전 '그날' 정치적 도구로 이용돼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새 정부의 수습 과정 역시 군인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를 넘기는 처벌보다 빠르고 정확한 치료와 사기 진작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년간 무엇보다 군이 가장 크게 상처받은 부분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한 점이다. 군 관계자는 "군사정권 이후 수십 년간 쌓아온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진 게 가장 뼈아픈 일"이라며 "국민이 우리 군을 '계엄군' 혹은 '내란군'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잔상처럼 남아 지난 1년 내내 가슴을 후벼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전 정부의 계엄 선포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신상필벌 지침 역시 상처가 되고 있다는 게 군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야전에선 신상필벌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앞섰다고 한다. 영관급 육군 현역 장교 A씨는 한국일보에 "지난 10월 1일 헌법적 가치 수호 유공자 표창 수여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잔잔했던 군심(軍心)이, '항명 특진' 7명 인사까지 발표되자 크게 요동쳤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지난 10월 31일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위법·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아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군인 7명에 대해 특별진급을 결정했다. 특진 대상자는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공수여단장 지시를 거부한 김형기 대대장, 특전사 병력 수송헬기의 비행 승인을 거부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강병국 상사 등이다. 진급자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진급 시기보다 2·3년 앞당겨 진급했다. 국방부는 "공적이 있는 군인을 예우함으로써 군심을 결집하고 복무의욕을 고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위관급 육군 장교 B씨는 '특진' 발표 당일 "현역 장교들 단체 대화방 곳곳에서 '항명하자'거나, '위계는 이제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이 많았다"며 "2016년 군번 대위들이 처음으로 소령으로 진급하게 되는 해에, 2019년 군번 후배가 단숨에 소령이 된 데 따른 박탈감을 크게 느낀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 군 간부들의 충격이 특히 컸다고 한다.
척결작업 본격화… '헛발질' 주의보
김상환 전 육군본부 법무실장이 지난달 24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육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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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만에 본격화하는 비상계엄 가담자 처벌 과정에 대한 우려 또한 크다. 국방부는 감사관실 주도로 지난 8월부터 비상계엄 때 출동했거나 계엄에 관여한 부대들의 당시 임무와 역할 등을 확인했다. 조사 대상은 ①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 등으로 출동한 특전사·방첩사·수방사·정보사 등 부대 관계자 ②합동참모본부 및 출동부대 지휘통제실 등에서 병력 출동에 관여한 관계자 ③'계엄버스' 탑승 인원 등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방부는 계엄버스 탑승자 가운데 전역을 눈앞에 둔 김상환 육군 법무실장(준장)을 대령으로 강등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징계가 향후 군심 이반이나 소송 등 또 다른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비역 중령 C씨는 "계엄 당시 과도한 음주 또는 출타로 (계엄사령관의) 지시를 못 받은 인원들은 논란에서 제외되고, 전화 통지 명령을 잘 받고 버스에 타게 된 참모들은 상당히 억울해하는 분위기"라며 "정치적 판단에 따른 과도한 징계가 나올 경우 행정소송 등도 줄을 잇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이제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을 수습하고 군 사기 진작에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계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미완성의 절차들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국민들에게 줘선 안 된다”며 “(신상필벌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하고 신속한 조치로 우리 군과 사회가 회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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