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이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2000명'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환자 피해에 대한 책임 추궁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의 요구가 커질 전망이다. 환자단체는 의료대란으로 인한 피해를 집계할 법적 근거조차 없다며 관련 법 통과를 촉구하지만, 환자 권익 증진과 실태조사의 근거가 되는 법안들은 국회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1년 넘도록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달 말 '의대 정원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의사가 부족하다는 추계가 부정확하고 △대한의사협회와의 증원 규모 논의 등이 부실했다며 2000명 증원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이를 토대로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의사 수 추계에 미치는 요인을 폭넓게 파악·검토하라고 통보했고, 복지부는 "감사 결과를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참고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의 책임자 문책 등 내부 처분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감사원 결과 발표 후 후속조치를 묻는 머니투데이 질의에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지난해 2월 13일 당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후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전공의협회 등은 '역공'에 나섰다. 의료 정책 추진 시 의사 등 전문가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더불어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들에 대한 분명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의협)며 날을 세운다.
의사단체는 지난해 2월 전공의 집단 행동 직후 복지부가 필수의료유지명령 ,업무게시명령 등을 내리며 "환자 사망 시 법정 최고형" "의사 면허 취소" "선처는 없다"와 같은 강경발언을 쏟아낸 것은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고 비판해왔다. '깜깜이 의대증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설득력을 얻을 전망이다.
복지부가 환자 피해를 운운하며 으름장을 놨지만, 뒤로는 국회에 "환자 피해와 의료대란간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점도 이번 감사 결과 발표 후 재부상한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달리 의료대란의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의료공백 사태와 환자 사망·질병·장애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복지부가 국회에 보고한 '입장'으로 전해진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7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정부의 ‘환자 중심 의료개혁’ 실현과 정부와 국회에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환자 권익 증진 등에 관한 법률 통과를 촉구하며 같은달 22일부터 국회 정문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의정갈등의 실질적인 피해자인 환자들은 분통을 터트리는 한편 일부는 겁을 내고 있다. 최근 정부가 성분명 처방, 지역의사제 등을 추진하며 의사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지만 '제2의 의료대란'이 반복되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연)는 의료공백 재발 방지와 피해 구제를 위한 환자기본법·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과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 등 이른바 '환자보호 3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환자의 투병과 권리를 증진하고(환자기본법) 의료대란 입증책임과 손실보상을 정부가 책임지며(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 최소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과 같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진료과 관련 의료행위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공백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의료법 개정안)는 요구다. 이를 위해 국회 앞에서 3개월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도 진행 중이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29회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하지만 환자기본법과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은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발의 후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 계류된 채 먼지만 쌓인다. 이달 초 비대면 진료, 지역의사제, 전공의와 응급실 인력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법들이 다수 통과했지만 환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불리는 법안 통과는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안기종 환연 대표는 "의료계, 정부, 국회 모두 이제는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이슈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환자들만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라며 "오는 16일이 100일째 되는 날인데, 그때까지만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종료하려 한다. 피해를 본 환자를 보호하고 혜택을 주는 보건의료 정책과 입법이 이뤄지길 바랄 뿐인데 이제는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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