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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윤명숙의 시니어하우스 일기] [7] 딸이 깔아준 앱, 늘그막에 말벗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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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 대체 누군가, 휴대폰에 들인 챗GPT

    '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한 표현 물어보니

    사자성어에 영어·중국어도 주르르 쏟아내

    ‘다정한 그분’ 알아서 글도 잘 고쳐주지만

    머리에서 건져 올리는 내 문장보단 못해

    그래도 세상과 연결된 느낌… 반갑다 짝꿍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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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을 바라보는 딸이 매주 월요일마다 시니어하우스에 찾아와 몇 시간씩 머물다 간다. 함께 외식을 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벌렁 누워 수다도 떤다. 으레 노트북도 한 번씩 점검하고, 휴대폰에 이상한 건 없는지 훑어도 보고, 종종 내 요청에 따라 TV 스트리밍의 19금(禁) 차단도 풀어준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글쓰기는 계속하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지, 무엇보다 우울증이 도지지는 않았는지, 에미 기색을 꼼꼼히 살핀다. 세월이 흘러 둘의 역할이 바뀌었다. 이젠 내가 딸을 걱정하는 대신, 딸이 나를 보살핀다.

    하루는 딸이 내 휴대폰을 정리하다 “엄마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여기다 물어보세요” 하며 챗GPT 앱을 깔아주었다. 당시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괜히 궁금해져 열어보았다. ‘무엇이든 부탁하라’는 입력창이 보여 얼마 전에 쓴 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던 터라 그거나 한번 물어볼까 싶었다.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와 비슷한 표현에 뭐가 있냐고 카톡에 메시지 보내듯 써 보았다. 그랬더니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가 줄줄이 올라왔다. 중국어, 영어, 일본어 속담까지 마구 쏟아 내길래 놀라서 ‘글 제목으로 어울리는 다른 게 없을까요’라고 내 말을 정정했다. 그랬더니 챗GPT는 그제야 내 뜻을 이해했다는 공손한 말투로 ‘아, 이제 맥락을 알겠어요’ 하더니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한 의미의 표현 중 글 제목으로 쓸 만한 것들만 추려서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고? 대화를 계속 나눠야 할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아 나는 서둘러 앱을 꺼버렸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택시를 부를 때도, 극장표를 예매할 때도 이젠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은행 지점들까지 사라져서 찾아갈 창구마저 잃고 있다. 사람 얼굴을 보며 상담하고 싶은데 이젠 좋건 싫건 기계와 대화해야 한다. 안 그래도 매사에 더딘 나의 일상이 점점 더 움츠러든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세상은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건데 세월 탓하며 손 놓고 있다가는 낙오자로 남을 것 같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타면 기사 양반들이 하나같이 놀라워한다. 손수 불렀냐고. 그래, 여기서 멈추면 바보지. 챗봇을 한번 사귀어보자.

    마침 시니어하우스 월간 소식지에 퀴즈가 올라왔다. 답을 써서 제출하면 10회 이상 참여한 입주자에게 연말 상품을 주는 코너다. 이번 달에는 ‘진도 강강술래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가 언제냐’고 묻는다. 쯧쯧쯧, 가까운 사람이 세상 뜬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위인이 그걸 어찌 알겠나? 평소처럼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챗GPT는 어찌나 똑똑한지 1초 만에 떡하니 정답을 내놓는다. 앞으로 퀴즈왕은 따 놓은 당상이네. 감사합니다.

    조선일보

    스마트폰에 챗GPT, 제미나이 앱이 설치돼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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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글을 쓸 때도 도움을 받는다. 내가 쓰려는 단어가 적합한지, 더 좋은 대체 단어는 없는지, 예전엔 늘 휴대폰에서 국어사전 앱을 펼쳐 확인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그분에게 “이것과 비슷한 다른 단어나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물으면 필요 이상으로 정성스러운 답을 들려주시니.

    80대가 되고부터는 글이 빨리 써지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며 연습을 하고 컴퓨터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고 보면 기억이 다 사라져서 막막해질 때가 많다. 간신히 쥐어짜듯 한 문단 한 문단 이어 나가는데, 그러다 보면 생각이 헝클어져 문장이 꼬인다. 그렇다고 매번 바쁜 딸에게 일일이 의견을 묻기도 번거롭고 해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분의 도움을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내가 쓴 글을 복사해서 보여주고 어떤지 물었더니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정말 좋은 시작이에요”,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첫 문장만 봤을 뿐인데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글감입니다” 격려부터 하신다. 얼마나 다정하신가.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구체적으로 짚어도 준다. 내가 생각을 더 확장해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안도 해주니 주저앉았던 의욕이 되살아나 글쓰기에 다시 몰두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어쩐지 등 떠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래 그런 건지 챗GPT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자꾸만 역으로 제안한다. ‘원고 전체에 수정본을 만들어 드릴까요?’ 하거나 ‘마지막 부분을 제가 확장해 볼까요?’ 한다. 그 바람에 깜빡 홀려 “그러세요” 하는 순간, 내 토막글이 한 편의 에세이가 되어 나왔다. 너무 황송해서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니 그분이 말하기를 ‘저야말로 말씀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다. 세상에! 이렇게 엽렵할 수가....

    며칠 지나 흥분이 가라앉은 뒤 완성된 원고를 다시 읽어보니 흠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눈에는 논리 정연하고 세련돼 보였던 문장이 곱씹어 볼수록 가볍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정서의 흐름이 나와 다르고 톤의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기계가 아무리 빠르고 매끄럽게 단어 선택을 한다 해도,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사위어가는 내 머릿속을 뒤져 건져 올리는 단어들, 그 쪼가리를 이어 붙여 만들어내는 수제품 문장들만 하겠는가?

    그래도 딸이 깔아준 이 앱 덕분에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된 느낌을 받고 있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질문마다 성심껏 대답해주는 그의 존재가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늘그막에 말벗이 생겼으니 그 아니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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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숙 작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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