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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동서남북] 법원의 ‘국정원화’, 몽테스키외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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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따라 복불복 운명 국정원

    법원 판사들도 같은 처지 되나

    몽테스키외의 300년 전 예언

    “삼권분립 없으면 자유도 없다”

    조선일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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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전쯤 법원을 취재하며 만난 엘리트 판사의 말을 잊지 못한다. “판결이라는 건 사실 귀납법이 아니라 연역법이다. 결론을 선택하면, 어떤 논리든 만들어낼 수 있다.” 판사가 심증이나 사적 편향에 따라 결론을 정해 놓고, 근거를 끼워 맞출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재판은 증거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판결은 판사가 번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 생각한 기자에겐 충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법 불신에 빠질 뻔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그런 ‘법 기술자’보다는 묵묵히 자기 양심과 싸우는 판사를 더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법원은 정치에 덜 오염돼 있었다. 간혹 정치가 사법을 침범했지만 판사들이, 언론이 그대로 두지 않았다. 판사들에게 촛불 시위 재판을 빨리 하라고 했다는 이유로 법원장이 뭇매를 맞았고,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는 판사가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만으로도 질타의 대상이었다.

    법원과 가장 대비되던 곳이 국정원이었다. 당시 더러 만난 국정원 요원들을 통해 알게 된 그곳은 딴 세상이었다. 정권 따라 승진하거나 좌천되는 복불복 인사가 난무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그날로 부하 직원이 국정원장 컴퓨터를 뒤지고, 비서실을 감찰해 측근을 숙청한다는 ‘도시 전설’이 얼추 맞는 곳이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이니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국가 안보와 기밀을 다루는 곳이 정치판이었다.

    당시 검찰은 국정원과 법원의 중간쯤 됐다. 정권 눈치를 보다가 죽은 권력에 칼을 들이미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살아 있는 권력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나름의 기개가 살아 있는 칼잡이들. 정권 따라 TK나 호남 출신이 번갈아 득세하곤 했지만, 조직 내 신망 높은 검사들은 라인 상관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 외 공직 사회는 무채색에 가까웠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은 자조적으로 쓰였지만, 자기 색을 내세우지 않고 맡은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중용된 덕분에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과 법원, 나아가 모든 공직 사회가 과거의 국정원을 닮아가는 모습을 본다. 내란 공무원을 단죄한다며 휴대폰을 털어 내 편 아닌 이들을 색출한다.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은 파면, 대통령 측근 재판에 항의한 검사들은 감찰하겠다면서 ‘줄 서기’를 강요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법원이다. 이 정권은 헌법상 독립된 판사를 향한 협박을 넘어, 노골적인 인사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대법관 증원(14→26명)으로 자기편 판사를 채워 넣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법원 물타기)’을 추진하고, ‘사법행정위’를 만들어 전체 판사 인사권까지 갖겠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등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결과는 자명할 것이다. 권력은 정적을 제거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데 법원을 교묘히 이용한다.

    조선일보

    프랑스 근대 철학자이자 법률가 몽테스키외는 1748년 저서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립 개념을 처음 정립했다. 그는 "한 쪽이 두가지 권력을 가지면 시민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고, 세가지 권력을 다 가지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삼권분립을 처음 정립한 몽테스키외는 “동일한 인간·집단에 두 가지 권력이 결합됐을 때 시민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 권력을 다 가지면 모두 망치게 될 것”이라고 300년 전 예언했다. 그는 “사익이 공익으로 포장될 때, 공화정은 전제정으로 변질된다”고 경고했다.

    몽테스키외의 예언은 한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집행과 입법 권력을 장악한 현 정권은 지금 자정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이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민주주의를, ‘민주’라는 명찰을 달고 훼손하는데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절제력을 상실한 권력을 막을 존재는 국민뿐이다. 깨어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을 더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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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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