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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단독]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21세기 세계를 뒤흔든 세개의 전쟁 내막을 다룬 ‘전쟁’ 마침내 국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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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밥 우드워드/김정수 옮김/캐피털북스/3만원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생생하고 총체적으로 담은 ‘전쟁’이 국내 출간됐다. 연일 전 세계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채운 세 개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트럼프의 백악관 탈환 전쟁’의 진실과 비화를 다루고 있다.

    책은 지난해 10월 15일, 미국 대선을 불과 20여 일을 앞두고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이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 시점에 맞춰 출간했다. 사실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두 번 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세계일보

    밥 우드워드/김정수 옮김/캐피털북스/3만원


    책의 저자는 밥 우드워드.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했고, 그가 펴낸 22권의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였다. 그중 15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계의 거장이다.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전쟁’은 미국에서 출간하자마자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는데, 마침내 국내 캐피털북스 출판사의 노력으로 이번에 출간됐다.

    저자는 세 개의 전쟁을 다루면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 초점을 맞춘다. 바이든은 미처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충격적인 사건에 직면한다. 바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이다. 미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이를 뒤집기 위해 트럼프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의사당을 점거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 폭력 사태에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까. 책은 서두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는 책의 끝부분에서 트럼프는 공익과 국익에 대해 무관심했고, 미국 역사상 가장 무모하고 충동적인 대통령이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석 달이 채 안 된 2021년 4월, 러시아군 17만 명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는다. 푸틴이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가. 우드워드는 바이든과 그의 국가안보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해 외교적으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이든은 푸틴을 설득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미-러 정상회담까지 개최하지만, 푸틴은 끝내 물러서지 않는다. 푸틴의 요구사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반대에 미국이 동의하라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약 1931km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러시아 안보에 레드라인이며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NATO의 개방 정책은 NATO 가입 여부는 해당 주권 국가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푸틴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의 존슨 총리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수차례 통화를 했지만, 푸틴은 자신만의 만트라를 반복했다. 결국 푸틴은 20222년 2월 24일 새벽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감행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 발발한 것.

    미국도 서방도, 그리고 러시아 자신도 우크라이나가 며칠을 못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빠르면 3~4일, 늦으면 한 달 안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모두 점쳤다. 그런데 그 전쟁은 지금까지 3년 9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군대를 꺾지 못하고 있다. 꺾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전쟁 시작 후 7개월 후인 2022년 9월에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군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전술핵무기의 사용까지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 임박했던 전술핵무기의 사용과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막기 위한 전시 막후 외교의 극도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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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저자 밥 우드워드. 캐피털북스 제공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공습하는 충격적인 테러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다. 하마스는 이 공격을 위해 수년을 준비했다. 이스라엘 지도부와 군부는 충격을 받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 정도 규모의 대담한 공격을 시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하마스 침공 1년 전에 이스라엘 정보부는 이 정보를 입수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무시해 버렸다.

    하마스의 무장 세력 약 3000명은 픽업트럭, 밴. 지프, 오토바이 심지어 패러글라이더까지 이용해 가자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침투해 수많은 민간인을 총살하고, 참수하고, 시신을 불태우고, 사지를 절단하고 산 채로 불태웠다. 잔악함의 극치였다. 이스라엘은 분노했고, 하마스 박멸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맹방이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군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보복은 좋지만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와 국방장관은 민간인 살상을 괘념치 않았다. 하마스를 박멸하기 위해 부수적 피해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바이든과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테러 조직 하마스 간의 유혈 분쟁을 막기 위한 험난한 여정 역시 우드워드는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훨씬 더 분노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곤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대통령 취임 첫해 어느 토요일 오후, 바이든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거의 5시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큰 씨x 개자식 두 명 ⎯ 비비 네타냐후와 마흐무드 압바스 ⎯ 과 전화로 계속 실랑이를 벌였어,” 그는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언급하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씨x 개자식 두 명,” 바이든이 강조하며 반복했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가속하는 미국 정치의 격렬한 권력 투쟁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 힘든 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해 백악관에 금의환향한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4년 동안 실질적으로 공화당을 지배하면서 그림자 대통령으로 행세했다. 그렇지만 그가 백악관을 탈환하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2년에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예상외로 참패했다. 이는 반트럼프 정서의 반영으로 볼 수 있었다. 이에 공화당은 트럼프를 외면했고, 트럼프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세 번째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서히 반전이 시작된다. 2023년 5월 30일,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중범죄 유죄 판결을 받는다. 성인 영화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으로 지급했던 돈을 회사가 변호사에게 법률비용으로 지출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 조작이라고 주장했고, 그의 추종 세력인 MAGA로부터 유죄 판결이 있은지 24시간 이내에 그의 대선 캠페인에 5000만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다른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어야 할 상황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그를 사랑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치는 결속의 단초가 되었다. 트럼프는 여기서 정치적 부활의 모멘텀을 잡는다. 이번 유죄 판결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모든 기소가 바이든의 음모와 모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무고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을 비난하면서 그의 연설과 선동에 다시 힘이 실렸다.

    2024년 6월 27일, 트럼프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이날 열린 미 전역에 방송된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의 노령으로 인한 쇠퇴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대선 TV 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트럼프가 말할 때 바이든의 입은 종종 벌어져 있었고, 눈은 크게 뜨인 채 초점을 잃고 있었다. 민주당과 민주당 후원자들에게 재앙적인 토론회였다. TV 토론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주당은 충격을 받았고 후보 교체 논의가 전국적으로 들끓었다. 바이든은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저 “나쁜 밤(bad night)”이었다고만 했다.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에서 유세 중이던 트럼프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를 살해하기 위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때 보여줬던 그의 용기 있는 제스처는 트럼프가 사실상 대통령에 당선될 것임을 기정사실로 했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움찔했다. 바이든은 반격의 카드를 내밀었다. 바이든이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 후보 자격을 부통령인 카밀라 해리스에게 넘겨준다고 발표했다. 해리스에게 남은 시간은 107일에 불과했지만,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한 열망이 다시 끓어오르면서 해리스는 기꺼이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엔 반대로 공화당이 충격을 받았다. 또다시 미국 정치 지형에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여전히 러-우 전쟁과 이-팔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두 전쟁 모두 해리스와 민주당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미국 국민은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미국이 지나치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더욱이 네타냐후의 가자 지구에 대한 대규모 폭격 사진과 동영상은 미국 내 반이스라엘 정서를 부추기며 바이든 정부를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트럼프는 백악관 탈환에 성공했다. 그는 지금 미국 대통령이 되어 전 세계를 상대로 MAGA 전쟁을 수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그 급류에 휘말려 있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가 직접 했던 말이다.

    책은 현대사를 뒤흔들고 있는 세 개의 전쟁에 관한 충격적인 증언이며 역사의 초고라 할 수 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특종 언론인인 저자가 독보적인 백악관 내부 취재를 통해 21세기 세계사를 뒤흔은 ‘세개의 전쟁’ 의 내막과 현실 속 정치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며 저널리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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