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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데이터센터 ‘낡은규제’… 인허가 받는데만 1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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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시대 핵심 시설 수요 느는데… 교통수요 많지 않아도 “길 넓혀라”

    공장도 회사도 아닌 특수성 외면… 주민 반대 내세워 아예 손놓기도

    건축 규제-심의 기준 등 정비 시급

    동아일보

    경기 용인시 기흥구 데이터센터 예상 투시도. GS건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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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한 시행사는 최근 담당 지자체 공무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센터로 진입하는 도로 폭을 기존의 2배로 확장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도로를 넓히려면 인근 창고 용지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미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알려져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 된 상태였다.

    지자체가 이처럼 갑자기 계획을 바꾸라고 요구한 데는 관련 기준이 미비하다는 배경이 있다. 데이터센터는 건축법상 방송국 등과 같은 방송통신시설로 분류된다. 출퇴근 인원이 통상 30∼90명 수준으로 적은데도 데이터센터에 대한 별도의 교통수요 기준이 없다 보니 지자체가 자의적으로 주변 도로 확장이나 주차장 면적 확보 등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나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가장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에도 주변 정체가 생기면 안 된다고 지자체에서 얘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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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 경기 시흥시 광석동 준주거지역 8357㎡ 일대에 9층 높이 데이터센터를 짓는 계획이 시흥시 건축위원회 심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서울대가 시흥캠퍼스 자리에 계획한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했지만 입찰공고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소음과 진동, 화재위험 등을 이유로 들어 강하게 반대하자 지자체가 아예 계획을 철회시키거나 후속 조치에 미온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필수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사업 지연 우려가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하는 등 정부가 AI 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공장도, 회사도 아닌 데이터센터라는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 주민들의 반대를 의식한 지자체들의 소극적인 행정 등이 ‘AI 고속도로’의 ‘병목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무 인력 확보가 수월하고 기업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수요가 몰리면서 1년 반 가까이 인허가가 지연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 92곳 중 68곳(73.9%)은 수도권에 있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중요한 시설인데도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데이터센터를 도시에 필수적인 시설로 보고 관련 건축규제나 심의 기준 등을 정비하는 한편으로 지방에 분산시킬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 데이터센터 ‘방송시설’ 분류… 근무자 적어도 “주차장 넓혀라”

    [데이터센터 인허가만 1년반]
    AI 데이터센터 ‘낡은 규제’
    외부에 창문 만들 필요 없는데… 경관 규제에 ‘유리 이중벽’ 설치
    지자체별 설치 허용지역도 제각각… “정부 통일된 지침 필요” 지적 나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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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100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추진 중인 GS건설 자회사 지베스코자산운용은 최근 인근 주민 2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센터에 대한 지역 주민 반대가 워낙 거세다 보니 센터 예정지 반경 1km로 범위를 넓혀 지역 커뮤니티시설을 개선하겠다는 제안을 하는 등 주민 설득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득에 나선 이유는 지난해 7월 개발행위허가신청을 낸 지 1년 반이 가까워 오도록 아직 사업 첫 단계인 인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주민 설명회를 열었지만 올해 7월 용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한 차례 계획이 반려됐다. 곧 재심의를 받을 예정이지만 인허가가 날지는 미지수다. 지베스코 관계자는 “준공 예정 시기인 2029년까지 지역 채용 약 4만 명, 준공 후 세수 확보 등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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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산업 발전 속도가 가속화하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필수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낡은 규제 체계와 주민 반대, 소극적인 지자체 행정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다른 나라와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미국은 4165개, 중국은 381개, 일본은 242개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165개다. 정부가 통일된 지침을 만드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컨트롤타워 부재에 지자체 ‘중구난방’ 규제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 사업이 지역 민원이나 여론에 휩쓸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건축물을 규정할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이 자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는 기업 전산 인력도 함께 입주해 오피스와 성격이 비슷하다. 임대용 데이터센터는 필수 관리·경비 인력만 입주해 무인 공장에 가깝다. 회사와 공장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건축 기준은 이런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시설면적 400㎡당 1대의 주차 면적을 확보하도록 한 규정이 대표적이다. 건축공간연구원(AURI) 이주경 부연구위원은 “데이터센터는 상주 인원이 적고 이를 임차하는 외부 기업 인력도 크게 드나들지 않는데 교통영향평가 기준이 과도한 면이 있다”고 했다. 데이터센터는 특성상 외부에 창문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자체의 경관 기준에 따라 외벽에 반드시 유리를 넣어야 해 유리벽으로 센터를 감싸는 이중벽을 만들어 심의를 통과한 사례도 있다.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는 중앙정부 차원의 통일된 지침이 없는 사이 제각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해 9월 일반주거지역 내에 데이터센터를 완전히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공업지역에서는 사실상 전역에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시흥시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의 중간 성격인 ‘준주거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 수도권으로 몰리며 민원도 늘어

    과도한 수도권 쏠림도 건설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상반기(1∼6월) 전국에서 준공된 데이터센터 6곳 중 5곳이 서울에 있다. 2028년까지 준공 예정인 20곳도 1곳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권에 들어설 예정이다. 땅이 부족한 수도권에 지으려다 보니 그만큼 주민 반대도 많아지는 것이다. 서민준 KAIST AI대학원 교수는 “데이터센터가 이용처와 거리가 멀어지면 네트워크 지연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기업이 많은 수도권에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수도권 지자체에서는 명확한 근거 규정 없는 요구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대형 설계사 임원은 “착공 신고 직전에 지자체로부터 기부금 요청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설계사 임원은 “데이터센터 주차장을 지자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주거지역에 짓지 못하도록 하는 등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오히려 지자체가 자의적으로 심의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진주시 등 지방에서는 오히려 지역 내 데이터센터가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는 만큼 지방 분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임종서 데이터정보센터장은 “데이터센터가 지방으로 간다면 전력망 안정, 지역 균형발전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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