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미국 연방정부는 10월 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역대 최장기간 '셧다운' 사태를 빚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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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경주의, 즉 사적 보복-응징이라는 폭력에 대한 비난과 우려뿐 아니라 맨지오니의 범죄에 공감하거나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건강보험사 횡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거워지자 급기야 정치권도 나서 보험사들로 하여금 보험 청구-심사 응답 시한을 의무화하고 응급 환자에 대한 보험금 사전 지급 승인 절차를 개선하게 하는 등 맨지오니가 기대한 ‘혁명적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제한적이나마 제도적 진전을 이뤘다. ‘비질란테’ 맨지오니는 동조자들에겐 영웅이었다.
자경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병리적 사회 현상이다. 부패한 특권층이 계급적 이익을 위해 비틀어 놓은 법과 제도라는 ‘공허한 정의’에 대한 분노, 포퓰리즘적 반엘리트주의와 마블식 영웅주의가 결합해 법치의 결함을 사적 폭력으로라도 보완-대체해야 한다는 파괴적 유혹이 낳은 현상. 하지만 거기에는 근대 자연법 사상과 법적 다원주의라는 배경이 있다. 국가나 법에 앞서 인간에게 부여된 천부적 권리 즉 생명과 재산,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천부인권 사상과 법이 제 기능을 못할 때는 다른 규범체계가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적 다원주의.
하지만 근대 계몽주의와 자연법 사상이 오늘날의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낳았다는 점에서, 자경주의는 어떠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적인 교란행위다.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 했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는 현저히 부실하지만 다른 모든 체제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은 정치체제다. 자경주의의 끝은 서부개척시대와 다를 바 없는 약육강식의 무법-무정부 상태일 뿐이다.
맨지오니의 범죄는 오바마 케어(ACA, Affordable Care Act)의 한계를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그나마도 미국은 최근 ACA 보조금 예산을 둘러싼 의회 갈등으로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는 사태를 빚었다. 자경주의는 그 자체로 동조할 수 없는 끔찍한 악이지만, 더 끔찍한 것은 민주-법치의 실패에 대한 그 난폭한 경고조차 수용하지 못할 만큼 무능-둔감해진 정치 현실일 것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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