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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회계감사, AI와 빅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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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몇 해 전의 일이다. 어느 글로벌 기업은 수천만 건의 회계 거래 내역 중 극히 일부만을 표본으로 뽑아 감사를 진행했다. 당시로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확인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동일한 기업은 AI와 빅데이터 기반 감사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모든 거래를 실시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단일 거래라도 즉각적으로 이상 여부를 판별할 수 있으며, 수작업 검토로는 놓칠 수 있는 은밀한 분식 회계 시도까지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적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는 감사인의 경험과 직관이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검증 체계가 감사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AI 시스템은 전표 입력, 거래 분류, 이상 거래 탐지 등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그 결과 감사 과정의 오류 가능성이 크게 줄었고, 감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한층 높아졌다.

    특히 최신 감사 지원 도구들은 K-IFRS뿐 아니라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 자료까지 자동으로 검색·요약해주며, 감사인의 규정 준수 검토를 획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과거 며칠씩 걸리던 방대한 문서 검토 작업이 이제는 단 몇 분 만에 마무리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외부 시장 데이터·뉴스·SNS 등 비재무적 데이터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회계감사가 단순한 숫자 확인을 넘어 기업 경영 전반을 반영하는 종합 리스크 관리 도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 - AI·빅데이터 활용의 위험 요소

    기술 발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와 해결해야할 과제를 수반한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문제는 데이터 품질이다. AI 분석은 투입되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완전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데이터가 입력된다면, AI가 내놓는 결론은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고, 이는 감사 왜곡이나 기업 의사결정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다. 머신러닝·딥러닝 모델은 높은 예측력과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도출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는 감사인의 설명 책임을 약화시키며, 감사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과 객관성을 저해할 수 있다.

    셋째는, 사이버 보안 리스크다. 클라우드 기반 회계 시스템과 대규모 데이터 플랫폼은 외부 해킹, 내부자 유출, 개인정보 침해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자체가 감사의 핵심 자산인 만큼, 보안 사고는 기업뿐 아니라 감사인의 신뢰도와 법적 책임 문제로도 직결된다.

    마지막으로, 감사인의 역량 변화라는 중요한 도전이 남아 있다. 이제 감사인은 단순히 절차를 수행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데이터 과학적 사고, IT 통제 이해, 알고리즘 해석 능력 등 폭넓은 역량을 겸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직무 변화가 아니라, 감사인의 정체성 자체가 데이터 기반 전문가로 재정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기회 - AI·빅데이터가 여는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와 빅데이터는 회계감사에 있어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첫째,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이다. 기업의 거래가 발생하는 즉시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탐지할 수 있어, 감사는 과거의 사후 점검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체계가 전환되고 있다. 이는 기업 리스크 관리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둘째, 사기 탐지 고도화다. 머신러닝은 정상적인 거래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흐름을 신속히 감지한다. 분식회계나 내부 통제의 허점을 조기에 포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의 회계 투명성과 대외 신뢰도가 크게 강화되고 있다.

    셋째, 맞춤형 감사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AI는 기업의 업종·규모·내부 통제 수준 등을 고려하여, 특화된 감사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업은 감사 결과에서 단순한 적합 여부 확인을 넘어, 실제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넷째, AI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을 담당함으로써 감사인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복잡한 판단, 윤리적 의사결정, 경영진과의 전략적 논의 등은 여전히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다. 이로써 감사인은 단순한 ‘규정 준수 점검자’가 아니라,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자문자로서의 위상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회계감사의 미래와 방향

    미래의 회계감사는 단순한 법적 준수 여부 확인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 기반 경영 자문과 리스크 관리를 중심으로 진화할 것이다. 기업 경영진 역시 AI와 빅데이터를 단기적 비용 절감의 도구가 아니라, 투명성·신뢰성·지속가능성 강화라는 장기적 가치 실현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올바른 법적 규제와 기준 정립이다. 둘째, 데이터 윤리와 개인정보 보호 원칙 확립이다. 셋째, 감사인의 전문성 강화다. 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맞물릴 때 AI와 빅데이터는 위협이 아니라, 회계감사의 혁신적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회계감사에 도입되는 AI와 빅데이터는 더 정교하고, 더 투명하며, 더 전략적인 감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이 조화를 이룬다면, 회계감사는 단순한 규제 준수 도구를 넘어 기업 성장과 미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형용 한성대 교수,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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