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원주민 희화화' 풍습 폐지운동 15년 만에 성과
즈바르터 피트 추방운동 시위대 |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네덜란드의 크리스마스 전통 풍습 중에는 '즈바르터 핏'(Zwarter Piet)이라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것이 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검은 핏', 즉 '흑인 핏'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블랙 피트'(Black Pete)로도 번역된다.
산타클로스의 조수로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과자와 선물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북 아메리카 등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시절에 식민지 원주민을 희화화해 만들어졌다.
네덜란드에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축제 때면 얼굴을 검정으로 칠하고 곱슬머리 가발과 이국적 귀걸이를 착용하며 입술 두께를 과장해서 '즈바르터 핏'으로 분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 때문에 최근 수십년간 과연 이 캐릭터로 우스꽝스럽게 분장하는 풍습을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즈바르터 핏 추방운동'을 이끌어온 제리 아프리'(44)는 4일(현지시간) AFP통신에 폐지운동을 시작한지 15년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또 올해는 굳이 추방운동 시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시인인 그는 AFP통신에 "매년 이맘때쯤이면 길을 가다가 얼굴에 검정 칠을 한 백인들인 즈바르터 핏 수백명을 보곤 했다"며 "요즘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네덜란드는 나아지고 있다'는 이름의 재단을 통해 네덜란드의 타국 식민지배가 노예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는 운동도 함께 벌였다.
즈바르터 핏 추방운동 시위대는 근처에 산타클로스가 즈바르터 핏과 함께 나타날 때마다 평화적 항의시위를 열었다.
때로는 달걀 세례나 폭죽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2010년 시작된 이 운동은 점점 힘을 얻고 국제적 주목도 받았으며, 2020년 미국에서 일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그 결과 마르크 뤼터 당시 총리는 "즈바르터 핏은 흑인일 따름"이라던 수년간의 입장을 뒤집고 즈바르터 핏 전통이 사라지도록 하는 데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아프리는 즈바르터 핏이 네덜란드에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널리 알린 동화책 작가 얀 스헹크만(1806-1863)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며, "백인 주인을 섬기는 흑인 하인"으로 설정됐다면서 "2025년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즈바르터 핏'으로 분장한 보수 시위 참가자 |
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인들 중 '즈바르터 핏' 전통이 이어지기를 원한다는 2016년에는 65%였으나 올해는 38%로 떨어졌다.
아프리는 그간 캐릭터 퇴출 운동이 성공을 거둬서 올해는 굳이 반대시위를 열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면서도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보라색 가발을 쓰고 얼굴에 가볍게 숯검정을 묻히는 방식으로 분장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다만 반(反)이민 집회에서는 흑인을 희화화하는 전통적인 '즈바르터 핏' 분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프리는 네덜란드가 여전히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와 씨름하고 있으며 인종차별과의 전쟁이 네덜란드에서 아직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면 온갖 일을 다 겪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이 나라가 인종차별 퇴치에 있어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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