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참조가격제 도입 필요성⋯가격경쟁 환경 구축해야"
협회 "5대 제약강국 도약 목표 의문⋯경쟁력 후퇴 우려"
"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이 내년부터 바로 시행될 경우 업계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제약바이오협회)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건강보험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정승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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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에서는 상반된 목소리가 내내 나왔다. 이 자리에는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 홍정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이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 약가정책 후진국 수준…제네릭 인하보단 가격경쟁 구조 구축해야"
이날 권 교수는 '제네릭 가격 경쟁의 구조 개혁'을 주제발표했다. 그는 제네릭 가격을 대폭 낮춰 더 많이 팔리는 'the lower, the more' 원리가 적용된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원리를 이용해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권 교수는 "미국은 제네릭 처방률이 90% 수준을 차지하지만, 약제비 지출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유럽도 제네릭 사용 비중이 평균 70%에 달하지만, 매출 비중은 19% 정도에 그친다"며 "가격을 대폭 낮춘 제네릭이 이들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면서도, 약제비 전체 지출은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제네릭이 많이 처방되면서도 지출이 높은 구조라는 분석을 내놨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제네릭이 차지하는 사용 비중은 약 49%에 달하지만, 지출 비중은 41%에 달한다"며 "제네릭 사용 비중이 큰데도 불구하고 지출 비중이 높다. 미국·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제네릭이 재정 효율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혜영 목원대 교수가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에 참석해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승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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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의 가격이 높은 문제가 아니라, 한 번 정해진 가격이 유지되면서 시장에서 자발적인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된 의약품 중 90%가 제네릭이며,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비중은 약 40%에 달하는 상황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같이 약가 정책을 운영하는 국가를 살펴봤더니 대부분이 후진국"이라면서 "정부가 제네릭 가격을 40%대로 정하겠다고 하는 방식으로 약가 제도를 개편할 것이 아니라, '참조가격제'를 마련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가격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조가격제는 효능이 비슷한 약물들을 묶어 가격 기준을 정하고, 이 가격을 초과하는 약물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일정 비율까지만 보상하는 제도다. 이 기준을 벗어난 약은 환자가 추가로 부담하기 때문에, 고가약 처방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국정 과제 '5대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 의문⋯예측 가능한 정책 수립해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이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와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을 동시에 이룰 방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사전 영향 평가와 예측 가능한 정책을 마련하고, 연구개발 등에 기여한 기업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정기 상무는 "1999년 이후 약가는 50% 가량 낮아졌고, 일부 연구에서는 누적된 재정 절감 추정치가 63조원에 달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 20여 년간 반복된 약가 인하 정책은 업계에 지속적인 압박과 불확실성을 부여해 왔다. 이로 인해 기업이 지속 가능한 투자를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제약·바이오 산업은 제네릭 중심에서 신약 중심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과도기에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초기 단계"라며 "이 때문에 정부가 '5대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을 국정 과제로 설정한게 아닌가 싶다"고 피력했다.
홍정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이사가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재정 효율화와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약가정책 개혁'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승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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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제도 개편 시도 전제에는 산업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홍 상무는 "우리 제약 산업은 120년간 국민 건강을 책임져 왔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부분의 국가가 필수 의약품 부족 사태를 겪을 때, 국내 제약사들은 국가적 위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극복한 바 있다"고 했다.
또한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 규모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약가제도가 무리하게 개편되면, 산업 경쟁력이 오히려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 상무는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였으나, 2023년에는 2.3%를 차지했다"며 "약가가 계속 하향 조정되면 5대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 목표가 실현 가능할지 걱정된다. 이는 결국 연구개발 투자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정책 개편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사전 영향평가, 예측가능성 확보, 기여 기반의 보상 체계가 있어야 한다"면서 "약가 인하가 연구개발·생산설비·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제도 시행 전에 분석해야 하며 제네릭 개발 기간이 3~5년, 신약 개발이 10년 이상임에도 개편안이 시행 수개월 전에 통보되는 방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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