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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30년 공직을 내려놓은 이유 [유상조의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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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조 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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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스스로 30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만류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만두려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진 퇴직의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108개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이었다.

    살다보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분과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분이 간혹 있다. 이모 선배는 이유 없이 필자를 좋아해 주셨던 분이었다. 대기업 이사까지 한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신 분이었다.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봉양을 실천한 것이다. 때마다 지역특산물인 대추도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다. 필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고 하면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냥 하염없이 주시려고만 했지 뭔가를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 선배가 숨졌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침에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오랜 벗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소아과 의사로 엄청난 부를 모았지만 그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셨고 심지어 약간의 빚도 남기셨다고 한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나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던 우리 친구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시면서 처음으로 술을 따라줬던 어른이셨다. 선하디 선한 분이었지만 병원에서 꽤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돌아가셨다.

    두 어르신의 죽음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죽음이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필자는 그분들에 비하면 효자도 아니요, 기부 액수도 미미하다. 앞으로도 그분들에 비해 효자의 삶을 살 것 같지도 않고 사회에 크게 기부하면서 살 것 같지도 않다. 하늘은 나 정도의 사람을 데려가기로 마음먹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자다가 죽을 수도 있고 오랜 기간을 병상에 누워 의료기계에 의존해 숨만 쉬다가 죽을 수도 있다. 두렵다. 한 마디도 남길 수 없는 순간 찾아오는 죽음도, 고통과 같이 와서 서서히 말려 죽이는 죽음도 두렵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살 것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래 그거였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린 시절 딱지치기 하듯 신나게 하는 것이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인생살이를 소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의 삶이 전쟁이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소풍을 떠나자.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마음이 여기에 이르니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은가. 무엇을 더 주저할 것인가. 나의 이야기를 덤덤히 쓰고 강의하면서 살자. 두 어르신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면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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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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