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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메아리] 혐중 현상, 내버려 둘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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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 용의자 중국인 정보 누출한 듯
    불법계엄 후 보수정당 혐중 정서 편승
    방관하면 사회적 소수자에 위협될 것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10월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이주인권단체 등이 '극우 혐중 집회의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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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플랫폼인 쿠팡 가입자 3,370만 명의 정보 유출 사태는 국민의 분노지수를 끌어올렸다. 허술한 보안체계는 말할 것도 없고 새벽배송으로 대표되는 가혹한 노동환경, 검색순위 조작,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의혹 등 쿠팡의 온갖 문제점들이 도마에 올랐다.

    쿠팡이 전방위로 질타를 당하는 와중에 이번 사태가 중국 국적 퇴사자의 소행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경찰이 입을 다물고 있는 만큼 정보 출처는 쿠팡일 가능성이 높다. 용의자를 중국인이라고 단정한 뉴스들에는 ‘범죄가 나타나면 중국인들이 안 끼는 데가 없다’ ‘중국인들은 추방이 답’ '중국 것들은 한국 망치는 짓만 한다' 같은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만약 쿠팡이 혐중감정에 기대어 비판의 화살을 돌리려 했다면, 참으로 노회했다고밖에.

    보수정치인도 슬쩍 숟가락을 얹었는데, 속셈이 얄팍하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중국 정부에 정식 수사·체포·송환을 분명하게 요구하지 못한다면 이 정권은 국민 기본권보다 중국 눈치를 먼저 보는 '친중 쎄쎄 정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이상휘 의원은 사실관계도 불확실한 익명게시판 글을 근거로 "쿠팡 정보기술(IT) 인력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라고 억측하거나 국회에 나온 쿠팡 대표에게 “돈은 대한민국에서 벌고 채용은 중국인을 하고 이익은 미국이 가져간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만약 용의자 국적이 미국이나 일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기업을 다그쳤을까.

    불법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잃고 지지기반도 크게 상실한 보수정당이 반중정서에 편승하려는 모습은, 백번 양보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몸부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반중’을 넘어 ‘혐중’을 부추기는 행태는 공공선을 추구해야 할 정당의 도리라고 할 수 없다. 공존의 조건을 허문다는 점에서 해악에 가깝다. 지금 보수정당의 모습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반중의 수준을 넘어섰다. 아예 중국인을 추방하자는 식의 성마른 혐중정서를 방치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불법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1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중국인들이 드론을 띄워 미국 항공모함과 국정원을 촬영하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한다”며 계엄의 간접적 동기로 난데없이 중국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허위로 판명된 선관위 중국인 체포설은 진실처럼 퍼졌다. 이후 보수(극우)세력들은 애국세력을 자처하며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자국민 안전이 우선’ ‘유괴, 납치, 장기적출 엄마들은 무섭다' 등 허위정보나 편견으로 점철된 현수막 달기 등 선동적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소수자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ㆍ모욕ㆍ위협하거나 차별ㆍ적의ㆍ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혐오표현(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이라면, 중국(인)에 대한 자제 없는 혐오표현들은 징후적이고 퇴행적이다. 중국의 성장이 더 이상 한국에 기회가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중국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혐중정서를 잠재우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미구멍 때문에 방죽이 무너지듯 이런 혐오표현과 행동을 제어하지 않으면 혐오의 대상은 시나브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20세기 역사의 교훈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등 권리투쟁을 하는 소수자들을 향해 (실제로 피해가 없으면서도) ‘역차별’을 운운하며 공격하는 일이 일상이 된 세태를 보면, 기우로만 볼 수 있을까. 혐중현상 확산에 이렇게 뒷짐만 지고 있어도 되나.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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