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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13% 벽에 갇힌 노동자들… "기업 단위 뛰어넘어 교섭할 수 있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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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노조 조직률 13.0%
    30인 미만 사업장은 0.1%
    노란봉투법 시행돼도 사각지대 우려
    노동계 "초기업노조 교섭 열어달라"


    한국일보

    양경수(맨 앞줄 왼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유최안 금속노조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의 손을 잡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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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 직원인 A씨는 노조에 가입하고 싶지만 가입서를 내기 꺼려진다. 직원 숫자가 30인이 채 안 되는 작은 업체라 사측의 '밀착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A씨는 임금이나 복지제도에 불만이 많지만 이를 표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임금근로자 100명 중 13명꼴로만 노조에 가입한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노동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사측과 교섭할 때 힘을 가지려면 조합원 수가 많아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3월부터 하청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인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라 교섭력 확보가 중요하다. 노동계는 "초기업 단위 교섭의 길을 열어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조 조직률은 13.0%(공무원, 교원 등 제외)로 집계됐다.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숫자는 277만7,000명이다. 노조 조직률은 2015년 10.2%에서 매년 꾸준히 상승해 문재인 정부였던 2020년 14.2%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건폭(건설노조와 폭력배 합성어)' 몰이 등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이 시작되면서 2022년 13.1%로 주저 앉았고 2023년부터 13.0% 박스권에 갇혔다.

    작은 일터일수록 노조 조합원은 적다. 대기업을 빼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 얘기다.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은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 35.1% △근로자 100~299명 사업장 5.4% △근로자 30~99명 사업장 1.3% △근로자 30명 미만 사업장 0.1%로 나타났다.

    노조가 조직된 형태별로 따져보면 초기업노조 소속이 164만1,000명(59.1%), 기업별 노조 소속이 113만7,000명(40.9%)으로 나타났다. 초기업노조는 소속 기업에 관계없이 같은 지역이나 업종, 산업 단위에서 종사하는 근로자가 구성원인 노조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노총 공무원연맹 등이 대표적이다.

    낮은 노조 조직률…"초기업노조 교섭 확대해야"



    한국일보

    연도별 노조 조직률. 그래픽=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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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는 낮은 노조 조직률과 높은 초기업노조 비율을 고려해 초기업 단위 교섭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별 기업을 뛰어넘어 산업별 노조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교섭하도록 하자는 뜻이다. 예컨대 지금은 각 병원별로 노동자가 경영진과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 조건 등을 두고 교섭하지만 초기업노조 교섭을 하게 되면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병원 경영자들의 대표가 교섭한 뒤 합의 내용을 전체 사업장에 적용하면 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개별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임금, 근로시간, 노동조건 등 굵직한 쟁점 정도를 두고 교섭할 수 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지난 8월 본지와 인터뷰에서 "(경영계와 교섭할) 노조도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초기업 단위 교섭으로 가야 한다"며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노란봉투법 시행령은 개별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청노조를 기업별로 묶거나 업종별로 묶는 방식을 택했다. 하나의 기업을 뛰어넘어 산업 전체 노조가 단일한 목소리로 교섭을 하는 제도는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전체 노조에서 초기업노조 비중이 59.1%로 다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기업별 교섭을 강제하고 있다"며 "노조 조직률이 낮은 사업장의 노동자가 같은 업종의 단체협약 효력을 누리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다시 개정해 초기업노조 교섭 통로를 열자는 제안이다.

    다만 경영계는 기업별 환경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초기업 교섭이 활발해지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재계 인사는 "격차를 좁힌다는 취지와 달리 교섭안을 따를 만한 상황이 아닌 영세 기업을 중심으로 경영 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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