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토)

    “딸기는 겨울 과일?” 상식 깨니…중동서 황금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히스토리 이상훈 아그로솔루션코리아 대표


    매경이코노미

    1974년생/ 고려대 국제전자통상학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국제협력실장/ 2020년 아그로솔루션코리아 대표(현) [아그로솔루션코리아 제공]


    ‘겨울 과일의 왕’하면 딸기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기준 딸기 생산액은 약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쌀을 제외한 단일 작물 중 1위다. 수출액 역시 지난해 약 6967만달러(약 1000억원)를 기록하며 ‘K푸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는 엄밀히 말해 ‘반쪽짜리’다.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만 생산되는 ‘6개월 시한부’ 시장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인 여름과 가을, 우리는 연간 약 1만 4000톤에 달하는 냉동 딸기를 수입하거나 고랭지의 신맛 강한 여름 딸기에 의존해야 했다.

    만약 이 공백을 우리 기술로 메울 수 있다면 시장은 어떻게 재편될까. 수입 냉동 딸기를 국산 생과로 대체하고, 여름철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을 열며, 겨울에만 국한됐던 수출을 연중으로 확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사계절 딸기가 본격 대중화될 경우 국내 딸기 시장이 단숨에 2조원대로 ‘퀀텀 점프’할 것으로 추산한다. 1년 중 절반을 놀려야 했던 농업의 비효율을 깨고, 농업의 판을 뒤집은 이가 있다. 아그로솔루션 코리아의 이상훈 대표다.

    스마트팜 해외 보급 공무원

    딸기에서 희망 보다

    이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고려대) 졸업 후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에 입사해 18년간 근무하며 국제협력실장까지 지냈다. ODA(공적개발원조) 전문가로 전 세계 농업 현장을 누비며 한국형 스마트팜 해외보급 사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토마토, 파프리카 등 다양한 작물을 시도해봤지만 한계를 느꼈다. 네덜란드 등 유럽 농업 선진국들이 이미 우월한 설비와 압도적인 종자 육종 기술(브리더)을 앞세워 장악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후발주자로 비집고 들어가기엔 기술, 자본이 뒤처졌다.

    딸기는 달랐다. 전 세계에서 당도가 높고 프리미엄급으로 인정받는 품종을 가진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한국은 ‘설향’, ‘매향’, ‘금실’ 등 독자적인 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 시장에서 독점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는 2020년, 안정적인 공공기관 실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그로솔루션 코리아를 창업했다. 남들이 내놓을 수 없는 여름 시즌의 프리미엄 딸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이보다 확실한 경쟁력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경이코노미

    아그로솔루션 UAE 아부다비 수직농장을 방문한 김혜경 영부인(좌)(아그로솔루션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간 효율 극한으로 높여

    사막서 월 1톤 생산하다

    이 대표가 주목한 딸기 농가의 고질적인 시장 허점(페인포인트)는 ‘계절성’과 ‘검역’이었다. 한국에서 여름에 맛있는 딸기를 구하기 어렵고, 딸기 생과 수입은 검역이 까다로워 사실상 막혀 있어 국내 여름 시장은 이른바 ‘공백 상태’였다. 이 대표는 문제해결을 본인이 해보겠다며 초기 자본금 2000만원으로 창업(2020년), 3년 차에는 아파트를 담보 잡아 3억원을 추가로 마련할 만큼 배수진을 쳤다. 이를 기반으로 기술 개발 끝에 사계절 딸기 생산 농장이 포함된 카페 ‘포시즌베리’를 열었다. 갓 딴 딸기로 케이크, 라떼 등을 만들어 고객과 바로 만나는 사업모델이다.

    이때 이 대표가 구현한 기술의 핵심은 ‘공간의 극한 활용’이다. 여기서 전문용어인 ‘재배 베드(Growing Bed)’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재배 베드란 스마트팜이나 온실에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도록 흙(배지)을 담아 공중에 띄워 놓은 긴 화분 모양의 구조물을 말한다. 식물이 자라는 ‘침대’인 셈이다.

    일반적인 스마트팜은 이 베드들이 고정돼 있다. 작업자가 베드 사이를 지나다니며 관리하고 수확해야 하므로, 사람 한 명이 다닐 수 있는 통로(Aisle)를 베드마다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체 면적의 30~40%는 재배에 쓰지 못하고 통로로 버려진다.

    하지만 아그로솔루션 코리아의 농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바닥에 레일이 깔려있다. 그 위로 재배 베드가 좌우로 움직인다. 일명 ‘무빙 베드(Moving Bed)’다. 평소에는 베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공간 효율을 높이다가, 작업자가 필요한 공간만큼만 자동으로 레일을 밀고 당기며 수확해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더블 베드’ 방식을 적용했다. 보통 한 줄에 하나씩 심는 것과 달리, 지그재그 형태로 묘목을 촘촘히 심어 단위 면적당 식재 본수를 극대화했다. 이 대표는 이런 과감한 설비 투자를 감수하고 균일한 환경을 제공해 일정한 당도(Brix 9~11)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매경이코노미

    1년 중 절반을 놀려야 했던 농업의 비효율을 깨고, 농업의 판을 뒤집은 이가 아그로솔루션 코리아의 이상훈 대표다.(아그로솔루션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 경쟁력은 해외에서 빛을 발했다.

    국내 시설 조성 경비가 평(3.3제곱미터)당 약 500만원이라면 중동은 물류비 등을 포함해 700만~900만원으로 비싸지만, 수익성은 압도적으로 좋다. 운영비의 60~70%를 차지하는 전기요금과 인건비가 중동에서는 저렴하고, 딸기 판매 가격은 한국보다 1.5배~2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내내 대체할 수 있는 고품질 생과일이 없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길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스리랑카에 수직농장을 각각 구축해 운영 중이다.

    특히 최근 진출한 중동 지역은 빠른 조성 과정 덕에 현지 호응이 높아 추가 수주가 진행중이라는 후문이다. 사우디 진출을 예로 들면 지난해 5월 현지 진출 계약을 체결하고 9월에 수직농장 구축을 완료했을 정도였다. 올해 1월 첫 수확에 성공했고, 비료 문제 등 현지화 조정 기간을 거쳐 2월부터 정식 수확에 들어갔다. 불과 1년도 안 돼 사막에서 딸기를 수확하는 성과를 낸 것이다. UAE 아부다비는 올해 1월에 진출, 9월부터 수확을 시작했을 정도다. 75평이라는 좁은 면적임에도 앞서 언급한 무빙 베드와 고밀도 식재 기술 덕분에 1만 2000주의 딸기를 심어 월 1톤을 생산한다. 스리랑카 시장 공략도 매섭다. 매년 500~1500평 규모로 확장을 거듭해왔으며, 내년부터는 연간 2000~3000평씩 늘려 5~7년 안에 10ha(헥타르) 규모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딸기 농사는 ‘모종 농사가 반’이라고 할 정도로 튼튼한 어린 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딸기는 어미 식물에서 뻗어 나온 줄기(러너)를 받아 모종을 키워내다 보니 한여름이나 가을에 딸기를 생산하고 싶어도, 그 시기에 심을 수 있는 모종을 파는 곳이 없었다”며 “이 대표가 사계절 묘 생산 기술을 개발했고 최종 소매 판매까지 밸류체인을 수직 통합해 농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했다”고 평가했다.

    매경이코노미

    1년 중 절반을 놀려야 했던 농업의 비효율을 깨고, 농업의 판을 뒤집은 이가 아그로솔루션 코리아의 이상훈 대표다.(아그로솔루션코리아 제공)


    변수는 없을까

    에너지 비용 절감이 핵심

    물론 이 황금 시장을 지키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가장 큰 적은 에너지 비용이다. 문정훈 교수는 “LED에서 나오는 열을 빼야 하는데 들어가는 냉방 에너지 비용 절감이 넘어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LED 에너지의 70%가 열로 방출되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함께 ‘LED 열 포집’ 기술을 개발 중이다. 램프에서 발생하는 열이 농장 내부로 퍼지기 전에 포집해 외부로 빼내는 기술로, 완성 시 냉방 에너지의 50%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과제는 경도(단단함)다. 수직농장 딸기는 일반 토경 재배 딸기보다 경도가 다소 낮아 장거리 유통에 제약이 있다. 이 대표는 이를 역이용해 중동 현지에서 ‘수확 후 24시간 내에 소비되는 가장 신선하고 부드러운 딸기’로 브랜딩하며 현지 소비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향후 B2B 대량 유통을 위해 경도가 높은 품종 개발을 지속적으로 시험 중이다.

    이 대표는 이제 농업과 금융의 융합을 꿈꾼다. 최근 농지법 개정 흐름에 맞춰 유휴 공간이나 농지에 수직농장을 구축하고, 향후 부지 개발 이익까지 기대하는 ‘농업의 금융 자산화’ 모델이다. 농업 수익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치 상승까지 결합해 투자 매력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익산 수직농장에 농작업 로봇을 도입하며 AI와 로보틱스를 통한 자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해외 현장에 이 로봇 기술을 적용해 원격으로 농장을 운영하며 한국의 재배 기술 유출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6개월짜리 반쪽 시장을 2조원대 시장으로 키우고, 불모지 사막에 첨단 딸기밭을 일구는 혁신. 이상훈 대표가 그리는 미래 농업 지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