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어둡고 우울한 ‘바닷가의 수도사’
문학가-왕자 등 여러 사람에 영향… 다른 작품들도 예술가에 영감 제공
◇침묵의 마법/플로리안 일리스 지음·한경희 옮김/244쪽·2만3000원·문학동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닷가의 수도사’. 이 그림은 너무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가 베를린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발견하고 바로 사들인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문학동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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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죽음의 제국에 유일한 생명의 불꽃으로 있는 것. 고독한 원 안에 고독한 중심으로 세상에 놓이는 것보다 더 슬프고 불쾌한 일은 없다. (…) 이 그림은 마치 지옥의 묵시록 같다.”
19세기 독일 화가인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바닷가의 수도사’를 보고 한 문학가가 남긴 글이다. 이 문학가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는 무한히 고독하고 막막한 이 그림에 대해 “눈꺼풀이 잘려 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며 절망감을 표한다. 그리고 몇 달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비슷한 시기 이 그림을 본 프로이센 왕자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그림을 보기 석 달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바닷가에서 하늘을 원망하며 홀로 선 남자를 보고 왕자는 아버지에게 “저 그림을 갖고 싶다”고 속삭인다. 왕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깜짝 놀라 그림을 산다.
바위산 정상에서 안개가 가득한 풍경을 보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그의 작품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찬사와 무시, 오해를 번갈아 받았다. 책은 이처럼 프리드리히 작품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몰입감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문화부 기자 출신인 저자는 독일 본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미술사와 근대사를 공부했으며 예술 잡지 ‘모노폴’을 창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런 경력을 살려 그림에 대한 소장 기록과 인간적인 사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교차시킨다. 화가가 살아있을 때부터 작품을 소장했던 소장자, 그림을 도난당하거나 불에 타고 전쟁에서 폭격을 맞을 뻔한 사연 등을 보여주면서 ‘작품의 인생’을 그려 보인다.
평론가와 왕자의 평가가 엇갈렸던 ‘수도사’ 말고도 여러 작품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거대한 산을 그린 풍경화 ‘바츠만산’은 나치에 의해 강인한 독일인의 표상으로 활용됐다. 이에 반해 ‘외톨이 나무’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보고 감동해 아름다운 시를 써냈다. ‘달을 보는 두 사람’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모티프가 됐다. 독일을 찾았던 월트 디즈니는 ‘밤비’의 배경을 그의 풍경으로 채웠으며, 20세기 독일의 가장 유명한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한다.
시대는 물론 사람에 따라서도 그림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화마나 전쟁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으면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마치 사람 같은 작품의 운명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책을 읽다 보면 예술 작품의 의미는 결국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저자는 이 말을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로 대신한다. 블로흐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낙관적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사람이 있고, 그 그림을 볼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니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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