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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다 같은 '한 마리'가 아니라고요"... 치킨 중량 표시 의무화가 가져올 변화 [주말의 디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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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식업 중 치킨에 처음 중량 표시제 도입

    파이낸셜뉴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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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중량이나 개수를 줄이는 ‘용량 꼼수’는 식품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다. 정부가 결국 이 편법에 칼을 빼들었다. 소비자를 기만할 뿐 아니라 체감물가를 끌어올리는 숨은 가격 인상으로 보고 대응에 나선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신선재료를 조리해 판매하는 업종 특성상 정확한 중량을 표시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우선 최근 논란이 된 치킨 업종에 한해 중량표시 의무를 적용하고, 향후 대상 업종 확대나 중량 감소 사실 고지 의무 도입 여부는 추가로 검토하기로 했다.

    왜 첫 타자가 치킨인가

    외식업 가운데 치킨이 중량 표시제의 첫 도입 대상이 된 이유는 지난 9월 불거진 프랜차이즈 업계의 용량 축소 논란 때문이다.

    교촌치킨은 간장순살·레드순살 등 주요 메뉴의 조리 전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약 30% 줄였고, 사용 부위도 다리살 100%에서 보다 저렴한 안심살 혼합 방식으로 변경했다.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실질 양을 줄인 '꼼수 인상' 정책이었다.

    교촌치킨 뿐만이 아니었다. 농협 목우촌이 운영하는 또래오래도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닭고기 호수를 11호에서 10호로 낮춰 약 100g의 중량을 줄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소비자 불만과 불신이 커지자 업계 관행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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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화 교촌F&B 대표는 지난 10월 국감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순살 메뉴의 중량을 줄인 사실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고지했냐는 지적에 "홈페이지를 통해 고지했지만 충분히 알리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고 답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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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는 ‘식품분야 용량꼼수 대응방안’을 공동 발표했다.

    핵심은 치킨 전문점이 메뉴판에 가격과 함께 닭고기 조리 전 총중량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치킨을 포함한 외식 분야에는 중량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아, 소비자가 실제 양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치킨 중량 표시제는 기본적으로 그램(g) 단위 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한 마리 단위로 조리하는 업종 특성을 고려해 '10호(951~1050g)'와 같은 호 단위 표기도 허용한다. 온라인 포장 주문에도 동일한 규정을 적용한다.

    다만 모든 치킨 업체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BHC, BBQ치킨, 교촌치킨, 처갓집양념치킨, 굽네치킨, 페리카나, 네네치킨, 멕시카나치킨, 지코바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 10대 가맹본부 및 소속 가맹점(전국 약 1만2560개)에 우선 적용된다. 국내 전체 치킨 전문점이 약 5만개임을 고려하면, 약 4분의 1 수준이다.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과의 전면전 나선 이유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제품의 양을 줄이는 방식의 ‘숨은 가격 인상’ 행위를 의미한다. 원재료비 상승과 경기 침체가 맞물린 상황에서 식품·외식 업계는 소비자의 가격 인상 저항을 피하기 위해 이 방식을 관행적으로 사용해왔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제품의 중량이나 구성, 품질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온 것이다.

    문제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소비자 기만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체감물가 상승을 가중한다는 점이다. 공식 물가 통계에는 일부 품목의 용량 변화가 반영되지 않아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자는 매장에서, 배달앱을 사용하면서 지출이 증가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격에는 변동이 없지만 소비자 부담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셈이다.

    정부는 대응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감물가와 공식 지표의 괴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용량 축소 관행을 방치할 경우 소비자의 혼란과 피해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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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 조리모습.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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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량 규제 때문에 치킨 더 비싸질 수도 있다?

    중량 표시제가 도입되면 소비자는 가격 대비 중량 정보를 명확히 비교할 수 있게 돼 슈링크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기대된다. 브랜드와 매장 간 중량 편차도 노출되면서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고 감시 체계가 강화된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는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을 반영한 세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중량 규제가 부분육 가격 상승을 유발해 순살 치킨의 가격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대부분이 10호닭(951~1050g)을 사용해 한 마리 치킨은 업체별 차이가 거의 없지만, 부분육은 여러 호수의 닭을 섞어 쓰는 구조여서 중량 규제가 시행되면 특정 부위에 대한 수요가 몰리고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정부는 제도를 15일부터 시행하고, 정기·수시 점검을 병행해 현장 안착을 유도한다. 다만 자영업자 부담을 고려해 내년 6월 말까지는 위반 시 처분 없이 올바른 표시 방법을 안내하는 계도 기간을 운영한다. 계도 기간 이후에는 시정 명령, 반복 위반 시 영업정지 등 강력한 조치를 적용한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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