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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시선]시작조차 안 된 내란 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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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기분을 즐길 새도 없이 12·3 불법계엄 1년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여야가 서로에게 “히틀러” “나치” 등 막말만 던지는 통에 “적폐 청산”으로 이룬 것 없이 끝난 촛불혁명처럼, 빛의 혁명도 거창한 구호 “내란 종식”과는 달리 성과 없이 끝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경험해왔듯, 청산과 종식이 대통령과 몇명의 측근에 대한 사법적 심판만으로 가능한 것인지, 한국 사회의 적폐와 내란이 몇명만을 감옥에 보낸다고 해서 끝이 날, 그렇게 얇고 가벼운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주먹을 불끈 쥔 채 “독재 타도!”를 외치고,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르며 눈물 흘리던 1980년대의 그들이 민주주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가치일지 배우려 노력했는지 의심한다.

    박종철·이한열이라는 두 청년 열사의 죽음으로 마침내 열린 ‘87 민주화 체제’ 이후까지도 체감되지 않던 ‘일상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한 세대 이후 2017년 촛불혁명으로 터져 나왔을 때, 그것은 당시의 부패한 대통령을 타도하자는 것으로만 모이지 않았다. 2025년 빛의 혁명 또한 무지하고 무능한 대통령과 그의 가족 및 최측근에 대한 사법적 심판만을 원한 건 아니다. 적폐와 내란이 쫓겨난 대통령과 몇몇 주변인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에 비해 근대적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아시아에서 한국만큼 민주주의를 열렬히, 그리고 꾸준하게 이뤄온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효능감은 그 어떤 사회의 구성원보다 높아야 하며, 정치인들은 그 높은 효능감을 방증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어이없을 정도로 무지하고 무능한 검사 출신 대통령과 수십년 한통속이었던 그는 검사, 그리고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오랜 시간 법조계의 황태자였기에, 고교생이 쓴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자녀의 영어 논문 등으로 신고당하고도 끝내 조사받지 않았다. 맞은편에는 상상 초월의 입시비리로 수많은 학부모·학생과 청년에게 박탈감을 안기고도,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의 피해자로만 자신을 내세워 대권을 꿈꾸는 교수 출신 정치인이 있다. 크게 다르다는 듯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지만, 민주주의에 관한 효능감을 뺏긴 시민들에게 이들은 ‘도긴개긴’일 뿐이다.

    최근 들통난 ‘형·누나 정치’는 어떤가. 퇴출된 대통령을 배우자가 “오빠”로 불렀다는 사실에 실소했는데,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 측근 정치인들이 ‘형제·남매 놀이’를 하고 있음이 드러나 정치판 그들의 수준이 결국 ‘도긴개긴’임을 확인해줬다. 이것은 유권자로부터 공식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사적 호칭과 퇴행적 관계로, 그러므로 결코 “주책”으로 눙칠 수 없는 공정과 상식 밖에서 불온한 정치를 이어가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탄핵당한 대통령과 ‘박절하게’ 끊지 못하는 제1야당 대표의 온갖 기행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그 반사이익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여야·좌우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가족주의적 짬짜미’가 쌓아 올린 적폐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겪어온 고질적이고 상시적인 내.란.이다. 그러므로 내란 종식은 쉽사리 시작될 수조차 없다.

    경향신문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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