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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칼럼니스트 |
사회생활 내내 잡지사 기자라는 직업을 해 오다 이른바 ‘프리랜스 에디터’ 생활을 한 지 1년 반쯤 됐다. 다행히 일이 있어서 즐겁게 하는 중이다. 나는 혼자 살아서 당장은 챙길 가족도 없다. 건강도 아직 괜찮다. 자랑이 아니다. 이러니 오히려 무중력 상태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하루는 무심히 지나고 할 일들도 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1년처럼 긴 단위의 시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럴 때 살림을 한다.
독신의 살림은 간단하다. 빨래와 청소와 조리 정도.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 청소는 진공청소기로. 식사도 솥밥이나 면류 등 한 그릇으로 끝나는 간편한 종류로 준비한다. 간단한 살림을 꾸리려 미리 머리를 쓴다. 옷은 애초에 세탁이 편한 면섬유 위주로 산다. 음식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을 두고, 사둔 음식이나 식재료는 먹을 만큼만 사서 버려지는 게 없도록 한다.
앞에선 간단하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적은 살림만 해도 마냥 간단하지는 않다. 빨래를 잘 말리려면 해가 드는 날 빨래를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날씨를 확인한다. 슈퍼마켓에 가도 무턱대고 식자재를 살 게 아니라 내가 집을 비울 일정이나 저녁 약속같은 걸 생각한다. 청소도 마찬가지. 밤에 청소기를 돌렸다 어떤 항의를 들을지 모르니 낮에 집에 있을 때 틈틈이 해둔다. 그러다 보면 살림이 어느 정도 내 일상의 모양을 만든다.
이런 요소들이 삶을 직시하게 해준다. 내 주변과 하루의 자연에 대해. 빨래가 잘 마르는 날씨에 대해. 음식이 보존되는 물리적인 시간에 대해. 세탁 앱에 내 세탁물을 다 맡기고 식사는 모두 배달음식이나 외식으로 처리하는 최신식 삶보다야 불편하다. 대도시의 배달 시스템은 24시간 내내 깨어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당장 눈앞의 빨래를 널고 한 끼 분량의 식재료를 썰어 냄비 하나 끓이는 일은 현실 그 자체다.
나이가 들며 스스로의 생각의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각자 삶 속에서의 경험들이 얼굴의 주름처럼 정신에 스며들고, 스며든 경험들은 편견이라는 정신의 지름길이 되어 스스로를 편협하게 만든다. 세상도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탁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멀쩡하던 사람이 과격한 주장을 하거나 비합리적인 망상에 빠지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각자의 정신의 주름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게도 내 편견과 정신의 주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집안일이 정신의 다림질 역할을 한다. 삶이 어렵고 세상이 혼탁한 건 당연하다. 그럴 때 살림 같은 내 눈 앞의 집안일이 내가 할 일이다. 그건 조금만 손을 쓰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삶의 의미나 행복의 정의 같은 건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반면 설거지가 다 끝난 접시의 뽀득뽀득함은 누구나 만져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가사노동은 고되다. 살림처럼 반복적인 가사에서 벗어난 과정이 문명의 발전사다. 동시에 살림은 각자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일상의 성취이기도 하다. 일상 주변에 그런 성취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나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걸 만드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원고를 마무리하는 동안 빨래가 끝났다. 빨래를 널러 갈 시간이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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