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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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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사랑·인생 모두 뜨거웠다… 한국 영화계 산증인 김지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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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LA서 대상포진 후유증… 향년 85세
    700편 출연 배우이자 열정적 제작자로 활동
    화려한 연애사에 '한국의 리즈 테일러' 별명


    한국일보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특별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김지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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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지’ ‘길소뜸’ 등으로 유명한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가 한국시간 지난 7일 오전 4시 3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직접적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인 것으로 전해졌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700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20세기 한국 영화계 최고 스타 배우 중 하나였다. 김기영 김수용 신상옥 이두용 임권택 등 당대 최고 감독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그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타이틀과 함께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고인은 덕성여고 재학 시절 외교관을 꿈꾸며 미국 유학을 계획하던 중 우연히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17세이던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데뷔하는 과정에서 얻은 예명 '김지미'가 배우로서의 이름이 됐다. 당시 김기영 감독이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데뷔작에 이어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로 스타로 오른 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육체의 길’ ‘장희빈’ ‘춘향전’ 등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의 성장에 기여했다. 1959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한 해 2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할 만큼 한국영화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훗날 그는 “한 편을 십 며칠 만에 찍기도 하고 20~30편을 연달아 찍은 시기의 작품들이어서 내가 출연한 영화는 미완성에 가깝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인의 도시적이며 주체적인 이미지는 당시 관객에게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 박경리의 소설을 각색한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인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1975)에선 사랑에 빠진 죄수 역할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중년에 접어들며 출연작이 줄어든 1980년대에는 제작자로도 나서며 자신의 영화사 지미필름을 통해 ‘티켓’ ‘길소뜸’ ‘명자, 아끼꼬, 쏘냐’ 등 여성의 시선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으로는 다시 한번 대종상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외화 수입에도 나서 ‘마지막 황제’ ‘로보캅’ 등의 흥행작을 내기도 했다.

    스타 배우로 사생활도 화려해 종종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견됐다. 흥행 영화를 함께 만들던 홍성기 감독, 당대 최고 인기 배우 최무룡과 결혼 및 이혼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수 나훈아와도 오랜 기간 연인으로 지냈다.

    ‘영화계 여장부’로 불리며 한국영화 지키기에 앞장섰던 고인은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영화 행정가로도 활약했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고인은 영화 산업 시스템 안에 갇히지 않고 삶의 신산을 녹여낸 주체적인 연기를 펼친 드문 여배우였으며 영화계 발전과 영화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어려운 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반세기를 풍미한 강단의 여걸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끝났으며 12일 고인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될 것을 고려해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추모 공간을 마련해 고인을 기릴 계획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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