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1 (목)

    [세계타워] 1등급 겨우 3%, 신뢰 잃은 수능 영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난이도 조절 실패 논란… 확실한 대책 필요

    “절대평가 체제에서 1등급 비율이 얼마인지는 의미가 없고 우리의 관심사도 아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달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방향 브리핑이 진행됐다. 질의응답 시간, “작년 영어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 비율은 6.2%라 적정난도 평가가 나왔는데, 올해도 작년과 유사하게 내려 노력했나”라고 묻자 수능 출제위원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1등급 비율에 관심들이 많은데 저희 관심사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이 소수의 1등급 비율에 ‘집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은 것이다.

    세계일보

    김유나 사회부 차장


    이런 기조는 처음은 아니다. 매년 언론이 ‘국어·수학 표준점수 최고점(만점자가 받는 점수)’, ‘영어 1등급 비율’ 등을 들며 난도 질문을 하면 교육 당국은 “수능은 상위권만을 위한 시험이 아니다. 최고점과 1등급 비율만으로 난도를 평가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올해 수능 응시자는 50만명이고, 상대평가 과목 기준 1등급(4%)은 과목별 2만여명이다. 절대다수인 중하위권에는 예년과 비슷한 안정적인 난도일 수 있는데, 전체 수험생 중 5%도 안 되는 이들의 체감 난도로 시험을 평가받는 것은 억울하다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를 모두 무시하는 것도 ‘나이브’한 생각이다. 난도의 소폭 변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위권의 체감 난도는 시험의 바로미터로 여겨질뿐더러, 훗날 시험을 치를 예비 수험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올해 영어는 상대평가 과목보다도 1등급이 줄며 ‘역대 최저 1등급’을 기록했는데, 이는 다음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영어도 어려울 수 있으니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신호로 다가온다. 절대평가 전환 후 일부 줄었던 영어 사교육 시장은 벌써 “영어도 소홀해선 안 된다”며 들썩이고 있다. 절대평가 전환은 수험생들에게 ‘영어만큼은 국어·수학처럼 달리지 않아도 된다’던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으나 이번 시험으로 무너졌다.

    1등급은 관심사가 아니라던 출제 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듯하다. 수능 성적 발표일, 평가원은 영어 1등급 비율에 유감을 표하며 “내년에는 1등급 6∼10%가 나올 수 있게 하겠다”고 했고, 다음날 이례적으로 사과문까지 냈다. 약 일주일 만인 10일에는 결국 평가원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했다. 교육부도 출제 과정을 조사해 개선안을 내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이들이 말하는 개선안은 올해 수험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수험생 사이에선 등급 조정, 대학 최저등급 기준 완화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실화되기 어렵다. 개선안이 어떻게 나오든 2027학년도에 적용되고, 올해 수험생은 ‘영어 쇼크’를 감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개선안으로 향후 모든 불확실성이 해소될지도 미지수다. 평가원은 작년 수능 직후 “내년 수능도 올해와 준하는 난도로 출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약속은 깨졌으나 돌아온 것은 “다음에 잘하겠다”는 말뿐이다. 평가원장이 물러났다고 해서 개별 수험생이 입은 피해가 복구되는 것도 아니다. 교육 당국을 믿고 있다가 내년에 발등 찍히는 일이 또 발생하더라도 올해처럼 피해는 수험생이 오롯이 떠안게 될 수 있다.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12년 혹은 그 이상을 달려온 수험생에게 난이도 실패는 ‘그럴 수 있다’며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올해 시험을 망친 이들에게 “내년에 잘하겠다”는 약속은 공허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수험생의 불안을 잠재울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