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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여적] 좁고 화나는 ‘미국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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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서울 종로구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비자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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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년 전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는 비자를 받으려는 줄이 담장을 두르고 길게 늘어섰다. 약속을 잡아도 몇시간씩 기다리기가 예사였다. 내라는 서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절차도 번거로웠다. 한참을 기다리다 마주한 영사의 질문에 조심스레 답하고 나서야 비자가 나왔다. 한국이 2008년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에 가입하기 전까진 그랬다.

    한국인은 관광과 상용 목적이라면 90일간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해 비자 없이 미국에 갈 수 있다. 줄을 안 서도 되고 비자 수수료도 아낄 수 있으니 약소국의 설움은 옛이야기가 된 것일까.

    미국 입국 심사는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는 입국 심사에서 곤욕을 치른 경험담이 넘쳐난다. 어디 가는지, 며칠 머무는지, 일행은 있는지 등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도 실전은 어렵다. 어설픈 영어에 공항 보안요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면, 괜한 모멸감이 느껴진다. 내 돈 쓰러 오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싶다. 미국 입국하려다 반미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닌 것이다. 미국 공항에서 인종 프로파일링으로 유색 인종을 집중 단속한다는 보도도 씁쓸함을 더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SNS 사용 내역까지 검열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0일(현지시간) ESTA로 입국하는 외국인 단기 방문객에게 5년치 SNS 사용 내역 제출 의무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ESTA로 미국에 입국하려면 e메일·주소·전화번호 등을 제출하면 된다. CBP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실은 SNS까지 검열해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비판적인 외국인의 입국을 아예 막겠다는 것 아닌지 의문이다. ‘표현의 자유’의 나라로 여겨왔던 미국의 퇴행에 어안이 벙벙하다.

    입국 규제 강화로 방문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이란 공습 비판 논평을 남긴 도널드 로스웰 호주국립대 국제법 교수는 “미국에서의 강연 초청은 수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소식을 접하고 SNS에 올린 글을 지워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좁아진 미국행 여로에 오르려면 울화와 짜증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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