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스톡홀름 행사 참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 뜨거워
韓문화원·서점 운영 ‘사랑방역’
책 나눔으로 세계인과 연결되길
최근 나는 세상 끝까지 가나 싶었다. 11월 23일 심야, 인천공항에서 이소호 시인과 만나 비행기를 탔다. 경유지 거쳐 스웨덴에 도착하는 데 꼬박 24시간 걸렸다. 현지 날씨는 음산했고 찬비 흩뿌렸으며 낮에도 컴컴했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
우리를 초청한 스톡홀름국제시축제(Stockholm International Poetry Festival) 일정은 너무 빠듯해서 글 쓸 여유나 노닥거릴 짬도 없었다. “선배님이 해외 문학 행사에 가면, 공짜로 여행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줄 알고 부러웠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너무 힘들어요.” 이소호 시인이 첫 번째 세션을 마치고 나를 쳐다보며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 우리는 여러 국가에서 온 시인들과 큰 무대에서 한나절 동안 릴레이 낭독회를 하느라 거의 혼이 나갔다.
한 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온 마라 리(Mara Lee)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녀가 무대에서 낭독한 작품 ‘나의 무거운 모국어’ 일부를 한국어로 옮겨본다. “내 부모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성장했어./때때로 낯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고, 내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도 나의 부모가 죽었다고 했지./사실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듣고 고개를 끄덕였어./그들은 사실을 무시하고 둔감하게 말했지.”
스톡홀름엔 한국에서 입양 온 이들이 적지 않고, 마라처럼 모국어와 친부모를 모른 채 살아가는 이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주스웨덴 한국문화원 서인희 팀장님 초청으로 잠시 그곳에 들렀다. 북유럽에서 유일한 문화원으로 꽤 큰 규모의 공간인데 도서관에 책이 부족한 점이 조금 아쉬웠다. 3년 전쯤 문을 연 한국문화원이라 차츰 질적 팽창도 이뤄지겠지만, 외국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게끔 다양한 신간 도서도 확충되면 좋겠다.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시행하는 문학나눔도서 보급사업이 해외 각지의 한국문화원까지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겨울 스톡홀름에 가기 전에 나 혼자 여름만 계속되는 나라에 갔다. 극에서 극으로 오갔다고 할까. 싱가포르작가축제(Singapore Writers Festival)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올봄에 천재지변을 겪어 무간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겨울이 다가오자 2개국 축제에 불려가고…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하나?
11월 8일, 내가 패널로 참석한 싱가포르 세계 여성시 세미나가 끝났다. 당일 사회자였던 크리스틴이 행사를 마친 모든 참가자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우리의 세미나가 축제 하이라이트였다는 소식과 한국문학에 관한 경탄으로 가득했다. 이튿날 열린 단독 한국문학 세션에는 현지 기자가 뉴스 단신을 전했다. “김이듬의 북토크에 싱가포르 작가들도 참석하고 싶어했지만, 표가 매진되고 행사장이 만실이라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책이 축제 서점에서 완판되었고 마지막 책을 산 저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나의 행사들이 인기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겠다. 한국문화예술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시류를 탄 데다, 작년에 참가했던 백세희 작가가 길을 터놓은 점, 누구보다 탁월한 통역가 김기원과 모더레이터 황유리 덕분이다.
황유리 작가는 싱가포르 유일한 한국서점 ‘봄모이’를 운영 중이다. 비싼 배송료를 내고 사들인 한국 책들이 서점에 가득하다. 나는 거기서 열 명도 넘는 한국 교민분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사랑방 같은 봄모이의 소중함을 얘기하셨다. 가족과 싱가포르에 정착해 살면서 한국문학을 통해 사람들과 문화를 연결하는 꿈을 이뤄가고 있는 황유리의 삶. 우리가 그 서점 운영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한 해가 끝나간다. 나는 세상 끝 같은 도서관과 서점에서 고독하게 서성이고 있을 이들을 그리워한다. 오늘이 세상 끝날 같더라도 살아보자. 세상 끝에는 또 다른 내일,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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