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길은 직접 걸어가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아가는가에 따라 다른 힘을 보여준다. 텍스트 역시 그것을 읽는지 아니면 베껴 쓰는지에 따라 그 힘이 다르게 나타난다. 걷는 사람만이 그 길의 힘을 경험한다. 베껴 쓴 텍스트만이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일방통행로'(도서출판 길 펴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 음미할 가치가 있다. 오늘날 학교는 불리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학생들이 AI로 생성한 글을 과제로 제출해서다. 이를 막는 건 솔직히 불가능하지만 기계에 의존해 스스로 생각하는 걸 포기한 학생들을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우려는 어른의 책임이자 권리인 까닭이다.
스스로 글을 쓰지 않으면 깊은 사유가 불가능하다. 그건 비행기에서 훑어본 후 그 땅을 잘 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실제 그가 아는 건 '길이 어떻게 뚫려 있는지'뿐이다. 그 길을 직접 걷는 여행자만이 모퉁이마다 '먼 곳,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곳, 숲속의 빈터' 등이 펼쳐지는 걸 알 수 있다.
글쓰기는 머릿속에 완성된 생각을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는 게 아니다. 머릿속 생각은 늘 안개처럼 흐릿하고 모래처럼 산만하다. 그대로 옮기면 엉망이 될 뿐이다. 베냐민은 말한다. "텍스트는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사유는 언어에 부딪히면서 질적 변화를 겪는다. 글의 맥락에 맞춰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배열하면서 생각은 분명해진다. 인간의 생각은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서 생겨난다.
더욱이 생각을 제대로 하려면 성찰의 힘, 즉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한 걸음 떨어져 자기 생각을 살피면서 옳은지 그른지, 제대로 섰는지 비틀렸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글이란 사물이 된 생각이다. 종이 또는 화면에 옮겨져야 비로소 거리를 두고 내 생각의 오류, 허점, 모순, 비약을 살필 수 있다. "써놓고 보니 말이 안 되네?" 쓰기는 자기 생각을 스스로 비판하고 검증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기계가 생성한 글을 살피면서 얻는 메타인지와 내 글을 살피면서 얻는 메타인지는 그 강도와 깊이가 너무나 다르다.
길은 직접 걸어본 자만이 그 세세한 풍경을 안다. 언어학자 김성우에 따르면 기계가 생성한 매끄러운 문장보다 스스로 쓴 문장에 깃든 '침묵과 주저함, 끝맺지 못한 문장이고, 떨림이며, 푹 숙인 고개' 속에 한 사람의 개성, 그 삶의 진실이 깃든다. 학생들이 AI에 중독돼 이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우리 미래에 더 큰 문제는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