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교수 J D 매클라치는 책 '걸작의 공간'에 이렇게 쓴다.
"책상과 그것을 둘러싼 방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아련한 아이디어나 마무리되지 못한 문단, 어른거리는 시의 연이 된다."
작가의 내밀한 골방도 우리들의 집과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럼에도 작가의 방에 '영혼'이 깃들었다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유는 책상에서 풍기는 나무 냄새와 창문 바깥에서 흘러오는 부서진 빛 사이에서 영원한 문장이 시작됐음을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 '걸작의 공간'은 저 내밀한 공간에 대한 탐험기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 '가지 않은 길'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 끝나는 프로스트의 시를 모두가 기억한다. 프로스트는 시의 바깥에서도 고독한 산책을 즐겼고 그의 시는 그의 집과 유관했다. 프로스트는 농장 소유 가문에서 태어나 집이 여러 채였는데, 뉴햄프셔의 '데리'란 지역에 살던 때를 가장 그리워했다고 한다.
프로스트는 직접 농사를 짓고 우유도 짰다. 이국적인 나라들을 여행하는 몽상 같은 이야기를 식구들에게 줄곧 하곤 했는데, 그가 가족들과 앉았던 식탁이 그의 데리 저택에 남아 있다. 그가 판자에 무릎을 대고 글을 썼던 의자도 전해진다. 책은 프로스트의 공간을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가지 않은 길'을 쓰던 시인의 표정을 상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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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는 '로완 오크'란 저택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글을 썼다. '8월의 빛' '압살롬, 압살롬' 등의 명저가 그때 나왔다.
로완 오크는 현재 미시시피대 소유로, 여기엔 특이한 전화기 한 대가 아직 놓여 있다. 로완 오크에 살던 포크너는 직접 농사를 짓고 장작을 패며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포크너의 예민한 성격상 주변의 방해를 견디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전화기도 식료품실 구석 선반에 놓여 있었다.
1950년 11월 10일 이른 아침, 스웨덴 신문의 뉴욕 특파원이 로완 오크로 전화를 걸었다. 전날 그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듣고자 기자가 건 전화였다. 포크너는 소식을 알지도 못했고 이렇게 답했다.
"직접 상을 받으러 갈 순 없다. 여긴 너무 먼 곳이다. 난 농사짓는 사람이라 집을 비울 수가 없다." 결국 노벨위원회에 설득당해 '빌린' 양복을 입고 스톡홀름에 도착하긴 했지만 말이다.
책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오차드 하우스, 에밀리 디킨슨의 디킨슨 홈스테드, 유진 오닐의 타오 하우스, 이디스 워튼의 더마운트 등 걸작의 탄생 공간을 소개한다.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들의 공간에 눈길이 가는 것은 시간이 축적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넘기면서 우리는 작가의 방이 아니라 그들의 방에 내려앉은 시간을 본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원자가 저곳 어딘가에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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