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왼쪽)이 지난 11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재단 대회의실에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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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강경진압으로 비극을 키운 박진경 대령을 정부가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보훈부 서울보훈지청은 지난 10월 박 대령 유족이 4·3 때 무공수훈을 근거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승인하고, 지난달 4일 유공자증서를 전달했다. 이에 4·3단체와 제주도민의 반발이 커지자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지난 11일 급히 제주를 찾아 사과했다. 국민을 체포·학살해 훈장을 받은 이를 다시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것은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노력을 부정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정부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박 대령은 ‘폭동 진압을 위해 제주도민 30만명이 희생돼도 무방하다’며 강경진압을 주도했다. 박 대령은 비극을 막기 위해 무장대와 교섭을 벌이던 전임 김익렬 대령 대신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9연대장으로 투입됐다. 박 대령은 부임 후 40여일간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을 벌여 마을을 불태우고 제주도민 5000여명을 체포해 해안가로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도민이 총살 또는 행방불명됐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12월 이 공적을 근거로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서훈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지난 4월 4·3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학살 책임자들을 단죄하지 못해 5·18계엄 학살과 12·3 비상계엄으로 이어졌다며 국가 폭력의 공소시효 배제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이재명 정부가 박 대령을 유공자로 등록했으니 “유공자 인정 증서에서 이 대통령 이름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는 유족들의 분노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 10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가 4·3을 공산주의 폭동으로 묘사하고 박 대령을 미화해 논란을 빚은 터다. 이 영화와 박 대령 유족들의 유공자 등록 신청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이들이 의도한 대로 왜곡된 역사를 공식 승인해준 꼴이다. 보훈부는 10일 유공자 승인과정에서 검토가 부족했다고 사과하면서도, 현 제도 하에선 무공훈장 취소 없이는 등록 취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어처구니 없다. 제도 탓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끝낼 일인가.
정부는 관련법을 재개정해서라도 유공자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박 대령에 대한 서훈 취소도 검토해야 한다. 이미 전두환·노태우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적으로 훈·포장을 받은 이들의 서훈을 취소한 전례도 있다. 국민을 학살한 이들이 국가 포상을 받고 영웅화되는 일을 방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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