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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임의진의 시골편지]라라의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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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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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빵과 잉어빵 한 봉지, 휴게소의 호두과자, 여기다 극장 팝콘 세트까지 생각나는 심심하고 근질근질한 날이다. 마당에 나가보니 밤새 산 중턱까지 흰 눈이 쌓였구나. 바깥나들이가 재밌겠다. 마침 누가 극장 나들이 초대를 하는데, 영화나 한 편 보러 갈까. 영화는 좋지만 뒤풀이를 생각하니 골치 아프다. 나이가 들어선가 밤마실이 성가시다.

    삼국지 주인공들이 아침 일찍 극장엘 갔대. 멤버는 유비랑 관우, 장비 그리고 조조. 그런데 성질이 불같은 장비가 매표소에서 대판 말다툼. 알고 보니 조조만 할인을 받아서란다. 아! 이런 개그를 기억해 시부렁대는 나조차 민망하고 재미없구나. 세상이 다시 재밌어질까? 어칠비칠 돌아댕겨야 하는 영화 구경은 제치고, 영화음악이나 골라서 들어볼까. 음반을 고르고 있는 중의 침묵과 고독은 언제나 근사하다. 이 기분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알 거야.

    소설가 최인호 샘과 법정 스님의 대화 한 편, “스님도 외로움을 느끼시나요?” “그럼요.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뎌져요. 물론 외로움에 갇히면 침체되지만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바람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글을 쓰는 일 말고도 직업상 번잡한 도회지에 나타나거나 갖가지 행사에 기웃대곤 해야 하는데, 잘 끊어내고, 스스로 가두며 갇히는 용기가 없다면 숨을 깊이 못 쉬고 병이 들 것만 같다. 홋카이도에 쌓인 눈 구경이 일품인 영화 <러브 레터>, 시베리아를 덮은 폭설의 <닥터 지바고>, 저 유명한 ‘라라의 테마’를 들으면서 비로소 물 밖으로 나온 고래처럼 숨을 거푸 쉰다.

    나는 썰매를 타고서 숲으로 달려가는 꿈을 자주 꾼다. 바다에 떨어지는 눈발도 아름답지만 산에 쌓이는 눈에 파묻혀 고독해질 때 비로소 야생의 생기가 꿈틀대는 거 같아. 입 돌아가게 눈밭에다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란 소리는 절대 아니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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