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가 출범하면 각 금융회사가 얼마를 집행했는지 따져볼 텐데,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도록 지원할 필요는 있지만, 요즘 돈이 없어서 기업 못 하나요. 기업 환경은 녹록지 않은데 돈만 푼다고 될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등 첨단전략산업과 관련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에 대해 한 금융지주사 고위 임원이 한 말이다. 11일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정부가 마련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에 금융사·연기금 등이 마련하는 75조원으로 구성되는 역대 최대 규모 정책 펀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성장펀드는 정체된 우리 산업에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성장펀드의 3분의 1인 50조원은 KB·신한·하나·우리·NH 등 5대 금융지주가 각각 10조원씩 부담하기로 했다. 금융지주사는 첨단 전략 산업 관련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저리로 대출할 계획이다.
지금 전 세계 주요 기업은 전(錢)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메타는 향후 3년간 AI 데이터센터 및 관련 인프라(기반시설) 확충에 최소 6000억달러(약 88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고, 구글은 올해에만 850억달러(약 125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사업 초기 과감한 투자로 시장을 선점한 뒤 진입 장벽을 쌓아 다른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 미국은 자국에 투자하라며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투자금액이 제한적인 기업은 미국 투자를 늘리려면 한국 투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대규모 정책펀드를 만들어 기업을 지원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금융지원을 제외하면 한국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4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내년 3월 시행되는데, 원청 기업과 일하는 수백~수천개의 하청 노조가 단일 창구 없이 각각 원청과 분리 교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수많은 하청 업체를 둔 대기업은 “1년 내내 하청 업체의 교섭 요구에 시달린다”며 개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하고 인수·합병, 공장 이전, 해외 투자 등 경영상의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경영진이 노조 허락 없이는 투자도 마음대로 못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당은 주가를 높인다며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1년 내 강제 소각하도록 법을 바꿀 계획이다. 차등의결권 제도와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한국에서 일부 기업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했는데, 방어 수단은 주지 않고 자사주 소각 의무만 부과하는 것이다.
중대재해가 거듭해서 발생하면 기업은 주가 폭락, 대출 제한, 입찰 자격 영구 박탈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경영진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일부 예외를 빼면 종업원은 주 52시간을 넘겨서 일할 수도 없다.
월급 받는 근로자 대부분은 정부의 친(親)노동 정책을 반기지만,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존재한다. 사업성이 좋다면 기업이 투자받을 수 있는 환경은 지금도 충분히 조성돼 있다. 금융지주사 임원 말처럼 규제는 강화하면서 돈만 푼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전재호 금융부장(jeo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