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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매경춘추] 숫자로 기록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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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4년 영화 '그녀(Her)'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지쳐 있던 그는, 사만다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감정을 느끼고 연결을 갈망하게 된다. 이 영화는 기술이 인간의 외로움을 어떻게 감싸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깊은 정서적 고립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당신은 평소 얼마나 자주 외롭다고 느끼십니까?" 2025년 사회조사의 질문에 13세 이상 전 국민의 38.2%가 '자주/가끔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 10명 중 4명이 평소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얘기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외로움을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 정의한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충분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1인 가구의 급증, 혼인·부양 가치관 변화 등으로 각자가 독자 생존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면서 외로움은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7월 발표된 생활시간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읽힌다. 가장 기분 좋은 시간으로 식사와 대면교제가 꼽혔지만, 혼자 식사하는 '혼밥' 비율은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했다. 스마트폰·PC를 통한 개인 미디어 시청 시간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의 생활양식은 '함께'에서 '혼자'로 이동 중이다.

    외로움은 연령대별 차이를 보인다. 10대 30.3%, 20대 32.2%인 반면 50대는 41.7%, 60세 이상은 42.2%로 연령이 높을수록 외로움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몸이 아플 때, 큰돈을 빌릴 때,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동시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은 전체의 3.3%였고 역시 중장년(3.6%), 고령자(4.5%)에게 더 높게 나타났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삶의 질을 해치는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고립이 장기화돼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고독사 사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 2023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의 절반 이상(53.9%)이 50·60대 남성에게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외로움을 사생활 영역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연결을 강화하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사회조사에서 국가데이터처는 사회적 관계망 항목으로 관계적 고립을 파악하는 동시에, 외로움 항목을 신규 도입해 정서적 고립을 함께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드디어 숫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외로움. 이 수치가 꾸준히 축적되면 지역 사회복지 정책 설계는 물론, 기업과 민간에서도 소비자의 정서적 니즈를 이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데이터로 읽는 외로움 통계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회적 관계망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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