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경수 지방시대위 위원장, 이 대통령, 신용한 지방시대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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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청년들이 빠르게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국토 면적의 12.1%에 불과한 수도권 인구가 2019년을 기점으로 비수도권을 앞질렀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난 30년은 지방소멸 30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향신문 7월2일 사설)
“이재명 정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못하면 ‘성공한 정부’는 헛꿈이 된다…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불균형은 이 땅에 사는 압도적 다수의 삶을 짓누르는 돌덩이다.”(한겨레 10월24일 제정임 칼럼)
둘 다 가슴에 강한 울림을 주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자치 30년의 역사가 지방소멸 30년의 역사라는 건 좀 이상하다. 지방자치 이후 지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왜 소멸의 위기에 처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방분권의 문제를 비롯해 여전히 강력한 중앙의 힘을 지적하지만, 이게 과연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방민은 바보인가? 항의를 하고 각종 선거 때에 정당의 정책에 따른 응징을 하면 될 게 아닌가. 그러나 지방 유권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이하 균형발전) 공약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진영논리에 따라 ‘우리 편’이라고 여기는 정당에 표를 준다.
유권자들이 바보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영악해서 그렇다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균형발전에 기대기보다는 중앙 권력을 ‘우리 편’이 장악하는 게 자기 지역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경험에 근거한 판단이다. 지방 전체에 도움이 되는 균형발전 정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자기 지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시위는 많거니와 시위자들의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살벌하다.
게다가 여기엔 계급의 문제가 있다. 발언권이 센 지방의 상층 계급에게 지역 경계는 무의미하다. 서울에도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면 되지 무엇 때문에 되지도 않을 균형발전을 입에 올리겠는가. 고향이 잘되면 좋은 일이니 이들 중에도 균형발전을 외치는 의인이 있기는 하지만, 열정은 없다. 의례적인 덕담 비슷하게 하는 말일 뿐이다.
지방의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면 안 될까. 지방 유권자들은 균형발전을 외치는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니 지역구에나 신경 써라”라는 게 유권자들의 명령이다. 균형발전에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균형발전을 마지못해 시늉만 내는 중앙 정당의 위선을 비판하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진 않는다.
지역정당이 있으면 그런 비판이 가능할 텐데, 이것마저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23년 지역정당 설립을 막고 있는 정당법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서울에 중앙당을 둔 전국정당만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헌법재판소를 하루빨리 지방으로 옮겨야 일부 재판관들의 ‘서울중독증’이 치유될 수 있을 게다.
중앙 권력은 균형발전에 반대하는가? 꼭 그렇진 않다. 원칙적으로 찬성은 할망정 5년짜리 정권의 이기심이 문제다. 민생회복 지원이라며 13조9천억원을 뿌리면 좋아할 유권자들이 많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그 돈을 균형발전을 위해 쓴다고 하면 알아줄 유권자가 별로 없다. 균형발전은 당장 성과가 나는 게 아니며 단기적으로 볼 때엔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좋은 예다. 국가적으로 시급하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산업단지를 세우는 건 지난 수십년간 반복돼온 수도권 비대화의 결정적 이유였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지방에선 매번 ‘그런가 보다’ 하고 잠자코 넘어간다.
갈가리 찢겨 균형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지방에 강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은 없는가? 독설과 선동에 능한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아 저 정치인이 저런 탁월한 재능을 균형발전을 위해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이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청래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다. 그의 표현을 이용해 균형발전과 관련된 독설 몇개를 만들어 보았다.
“균형발전 하지도 않을 거면서 균형발전 하겠다고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다.” “균형발전은 혁명보다 더 어렵고 때를 놓치면 못 한다. 시간을 끌면 망하게 돼 있다.” “균형발전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들은 응징해야 한다.” “균형발전을 위협하는 암 덩어리는 전부 다 긁어내서 확실하게 처단해야 한다.” “악수도 사람하고 악수하는 것이다. 균형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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