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양계장의 모습. 철망으로 둘러싸인 ‘배터리 케이지’ 내에 A4 용지 크기도 안 되는 공간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들.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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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얼마 전 한 방송인이 운영하는 업체가 ‘4번 달걀’을 고가에 판매해 논란이 일었다. 2019년부터 실시한 계란사육환경표시제에 따라 닭의 사육 환경을 나타내는 숫자가 난각에 표기된다. 1번은 자유 방사, 2번은 축사 내 평사, 3번은 마리당 0.075㎡를 허용하는 케이지, 4번은 마리당 0.05㎡의 케이지 환경을 의미한다. 논란이 된 방송인은 입장문을 통해 가격이 높은 이유는 사육 환경이 아닌 원료와 사육 방식의 차이라며, “1·2번 달걀만 좋고 4번 달걀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4번 달걀은 사육 환경 중 하나의 선택지라기보다, 금지가 예고된 과도기에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환경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부는 2018년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육 면적 기준을 기존 0.05㎡에서 0.075㎡로 상향했다. 따라서 2018년 이후에 설치되는 시설은 4번 환경은 허용하지 않되, 개정 이전에 설치한 농가는 시설 개선 준비 기간 확보를 위해 7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2025년 9월까지 사육 밀도를 낮추도록 했다. 그러나 약 1000개 산란계 농가 중 480여개 농가가 아직 기존 시설을 유지하고 있고, 공급량 감소를 우려하는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했다.
업체가 주장하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공공급식에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사용하자고 제안하면 ‘축산물의 품질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묻는 말이 제일 먼저 돌아온다. 동물복지 축산인증제의 취지는 축산물의 품질 개선이 아니다. 동물복지 기준을 따르는 농장을 국가가 인증해 농장동물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고물가 시대에 어차피 죽어 식탁에 오를 동물, 그것도 맛이나 영양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고기가 될 동물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4번 달걀을 금지한 계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201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살충제 달걀 파동’이다. 모래 목욕을 통해 닭 진드기를 털어낼 수 없는 밀집 사육 환경에서 닭에게 뿌린 살충제가 달걀에 잔류했음이 밝혀지면서 공장식 축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이유였다. 닭이 사는 환경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도 증가했다. 농장동물의 복지와 사람의 건강을 별도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반려동물 숫자가 늘어나면서 동물복지 필요성이 높아졌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동물복지의 개념과 원칙은 애초에 농장동물 때문에 등장했다. 1964년 영국의 작가 루스 해리슨이 ‘동물기계’라는 책을 통해 당시 축산농장의 열악한 실태를 폭로하였고, 이를 계기로 1979년 영국 정부가 꾸린 농장동물복지위원회가 제시한 ‘동물의 5대 자유’는 현대 동물복지 과학과 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동물복지 정책과 예산은 대부분 반려동물에 치중되어 있다. 동물이 살고 죽는 과정이나 사용되는 동물 마릿수의 규모를 본다면 ‘가족’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반려동물의 복지 개선이 농장동물보다 시급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축산 관련 부서 간 연계성이 부족해 농장동물 복지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한계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의 80번째 국정과제인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에는 ‘농장동물 복지를 개선하고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평생을 케이지에 갇혀서 알만 낳는 닭이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은 줄이고 조금이나마 좋은 것도 겪게 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품질 면에서 훨씬 월등한 달걀을 낳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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