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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이익’보단 ‘정의’가 만드는 전환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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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노르웨이 포센 지역에 건설된 풍력발전 단지 두곳은 소수민족인 사미족의 순록 방목지 안에 들어서서 분쟁을 일으켰다. 포센 풍력발전 단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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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영화 ‘겨울왕국2’에 등장하는 ‘노덜드라’ 민족의 모델로 유명한 ‘사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다. 오랫동안 이들은 전통 방식으로 순록을 방목하며 살아왔는데, 고기는 식량원, 뿔은 전통 공예품 재료, 털은 옷감이다. 선진국들이 산업 발전을 한답시고 일으킨 기후 변화는 이런 사미족의 삶에도 큰 어려움을 가져왔다. 겨울이 따뜻해져 비와 눈이 번갈아 오는 통에 쌓인 눈이 더 단단히 얼어붙어 순록이 방목지에서 먹이를 찾아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료를 동원할 수밖에 없고, 순록은 점점 더 인간에게 길들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뤘던 전통적인 사미족 삶의 방식에 균열이 생겼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삶을 침식해온 각종 ‘개발’ 역시 희토류 채굴을 위한 광산 개발 등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무엇보다 역설적인 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에너지 ‘전환’마저 이들에겐 삶을 위협하는 ‘개발’이란 사실이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삶터는 풍력발전이나 송전망 건설 등 기후위기 대응 프로젝트의 입지를 따질 때도 가장 ‘경제성 있는’ 먹잇감이다. 스웨덴 최북단 4개 주에서는 2003년 48개였던 풍력발전 터빈 수가 2019년 1557개로 늘었고, 2020년엔 2155개가 건설 허가를 받았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해, 사미 원주민은 기후·생태계 변화 같은 직접적인 영향뿐 아니라 ‘녹색’ 개발이나 ‘청정’ 에너지 전환이란 명목으로 이뤄지는 에너지 프로젝트와 자원 추출에도 위협당한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중부 해안 지역 포센에 조성된 풍력발전 단지는 이런 모순이 압축된 사례다. 사미 공동체들의 삶터인 이곳에 노르웨이 수자원에너지국은 2010년 풍력발전 단지 건설의 허가를 내주었고, 두곳이 2019~2020년 순록 방목지 안에 건설됐다. 터빈의 소음과 날리는 얼음 조각 등은 이곳 사미족과 순록이 오랫동안 이어온 삶을 망가뜨렸다. 힘겨운 투쟁 끝에 2021년 대법원은 이곳 풍력발전 단지 건설은 순록 유목민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원주민의 권리보다 우선할 순 없다는 판단이다.



    풍력발전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2024년 정부는 유목민들에게 47만3천달러(약 7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2027년까지 대체 방목지를 찾아주기로 유목민들과 합의했지만,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사미족 거주 지역에 풍력발전 단지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갈수록 늘고 있다. 최근에는 국영기업이 기존 액화천연가스(LNG)발전 플랜트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서 건설하려는 54㎞ 길이의 송전선이 사미족 거주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한 사미족 유목민은 “자연을 돈으로 살 순 없다”고 했는데, 애초 ‘사미’(Sámi)는 사미족 말로 땅이란 뜻이다.



    ‘탄소중립’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나 송전망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분출할 전망이다. 정부는 주로 ‘이익공유제’란 해법을 통해 이를 풀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나 송전망 운영에 직접 참여해 그 수익을 가져가게끔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결정이 얼마나 자발적이고 선제적이며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소수가 자신의 삶을 변형한 대가로 다수가 살던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이익을 공유한다’는 말의 속뜻은 결국 ‘헐값에 채굴권을 사들인다’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이지만, ‘전환’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현재 문명 내의 고장이 아니라 현재의 문명 자체의 문제”(조효제,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로, 기존 자본주의·식민주의 시스템을 놔둔 채 에너지원만 바꾸는 것은 단지 오래된 착취 구조에 새로운 껍데기만 입혀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단지 에너지원이 아닌 문명 자체의 전환이라면, 추구할 방향의 첫 글자론 ‘이익’(P)보다 ‘정의’(J)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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