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지난 4월4일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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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 한국교원대 교수·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단 위원장
불법적, 반헌법적 비상계엄으로 인한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을 넘겼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혼란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여전히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이들과 마주해야 하는 시민들의 고통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야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외치면서 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요구했던 동학도들의 몸부림이 무능한 지배 세력이 동원한 외세에 의해 무참히 꺾이고 맞은 20세기는 우리에게 식민지 상황을 강요했다. 그 질곡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외침을 멈추지 않은 백성들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3·1운동을 통해 시민으로 전환할 기회를 얻었다. 같은 해인 1919년에 세운 임시정부의 정체(政體)를 민주공화정으로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그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될 길을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시민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학교 교육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모아 우리 아이들을 자주독립국의 시민으로 길러내고자 했다. 불행히도 이 학교들은 식민주의자들의 강압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식민교육 정책 속에서 황국신민학교로 전락했다. 광복은 그 왜곡된 교육체제를 극복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했고,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그 일을 해내면서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에도 성공을 거둔 세계사적 역사를 함께 쓸 수 있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자괴감을 맛보아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망설이지 않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계엄 해제를 결의한 의원들을 보면서 우리가 받은 시민교육의 힘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학교 시민교육을 되돌아보고,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 방안을 마련할 필요와 마주한다. 그 길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안이기 때문이다.
학교 시민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이 마음 놓고 사회적 쟁점들에 관한 수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교육이 교사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오래된 교육계의 금언은 이 지점에서도 어김없이 통한다. 교실에서 사회적 쟁점들을 놓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장성과 논쟁성의 원칙은 비판적 사고력을 가진 자율적 시민이 되기 위한 기본 토대다. 물론 교사들이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강요하는 교화를 해서는 안 되지만, 학생들이 선을 넘어 편향된 이념을 말할 때 그것을 넘어설 가치를 전달하는 일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논의만 거듭해 온 ‘학교시민교육법’(가칭)을 이제는 제정해야 할 절박한 필요와 만나게 된다. 헌법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주제로 토론수업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법은 시민의 덕성이라는 차원에서 기존 ‘인성교육진흥법’과 통합해 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성교육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인성이 시민의 덕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적 토대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해야 할 일은 지역과 학교 상황에 맞는 시민교육이 가능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학교시민교육법 제정이 주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차원의 과업이라면, 이 과제는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과제다. 시민교육의 기본 원칙들을 준수하면서도 학교와 그 지역 상황을 고려해 다양한 수업이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하면, 민주주의가 곧바로 자신의 생활과 연결된 것임을 깨우칠 기회도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학교 안에서는 교사들의 다양한 시민교육이 보장받을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 과제는 학부모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을 때 제대로 수행할 수 있고, 이 지지를 바탕으로 학교 시민교육은 학부모를 매개로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야 한다. 극단 세력이나 일부 정치권의 반시민적 행태도 일상적인 공론의 장과 투표를 통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 노력이 축적되면 극복도 가능해진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즉각적인 극복의 과정을 공유한 우리 시민들은 학교 시민교육을 토대로 등장한 역사적 주체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공론장의 주도권을 쥐는 전세계적 퇴행이 우리 시민사회도 위협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교사와 학부모에서 출발하여 교육청과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로 확장하는 학교 시민교육의 체계화는 ‘한국형 시민교육’(K-시민교육)으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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